단둥(丹东) Hekou Village (河口村)
Hekou Village (河口村) 하구촌 마을은 단동에서 북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 마을입니다.
이곳은 6·25전쟁 때 중국군이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에 진입한 관문이기도 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며 강 앞에는 중국과 한국을 연결하던 압록강 하구단교(부서진 다리)가 있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하구촌 마을 사람들은 압록강에서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만들어 파는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매운탕을 만드는 물고기를 북한 주민들 한테서 사기도 한다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밤새 몰래 국경을 넘어와 잡은 물고기를 팔고 간다고 합니다. 도로변에는 식당이 많이 있었는데가이드는 어느 식당의 매운탕이 맛있는지 다 꿰뚤고 있었습니다.
하구촌(Hekou Village, 河口村)에는 유람선이 있는데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압록강을 돌아오는데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유람선을 타고 북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전거를 타고 마을의 다리를 건너고, 농사를 지으며, 강가에서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남정네들은 그물로 고기를 잡기도 하고, 북한 초소에서는 보초병이 들락날락 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鸭绿江河口游船线路实景图
압록강하구유선선로실경도
(압록강하구유람선 노선도)
▼압록강하구단교
鸭绿江河口断桥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40㎞쯤 올라가면 한국전쟁의 아픈 흔적으로 남은 단교인 청성교가 있다. 이 끊어진 다리를 중국에서는 "압록강하구단교"라고 부른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수많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 다리를 건넜다. 당시 마오쩌둥(모택동) 중국 주석의 맏아들 마오안잉(모안영)도 이 다리를 건넜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1951년 3월 미군의 폭격을 맞아 끊어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체 다리 아래로 압록강만 유유히 흐르고 있다.[구글검색편집]
압록강하구단교(청성교)의 위치는 '압록강단교'에서 수풍발전소 방향으로 40여 Km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으로는 중국 단둥시 관전현 하구와 북한의 평안북도 청성군에 속해 있 다. 그래서 "청성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42년 북한과 만주정부가 공동 건설한 압록강의 공로교(公路橋) 로서 길이가 709m, 너비 6m, 높 이 25m의 철근콘코리트 다리로서 교각은 22개이고, 하중은 60톤이다. 이 다리도 6.25전란 중인 1951년 3월 29일 미공군에 의해 폭격되어 江 속으로 사라지진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구글검색]
호산장성
중국어 간체자: 虎山长城, 정체자: 虎山長城,
호산장성(중국어 간체자: 虎山长城, 정체자: 虎山長城, 병음: Hŭshān Chángchéng 후산창청)은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족 자치현 후산진에 위치한 유적이다.
장성 유적의 인근에서 주민들의 의해 발견된 석산이 드리워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석산은 고구려의 성인 박작성이 철거되어 생긴 석산이다. 호산이란 의미는 "멀리서 보면 호랑이가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호산(虎山)"이라고 한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경을 둔다. 현재는 장성 유적을 산책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다.[위키백과]
호산장성(虎山长城)에 대한 중국의 주장
명나라 성화제, 성화 5년(1469년)에 축조됐다. 건조한 목적은 세력을 높히던 여진족과 해상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말그대로 주장]. 하지만 목적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명 말기, 후금의 세력 아래에 들어가며 파기되었다.
1989년, 하늘에서 랴오닝성의 장성을 조사해서 명사대로 호산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푸순, 선양, 랴오양, 안산, 진저우를 통해서 허베이성과의 경계의 산하이관까지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호산의 600여 m의 장성 유적을 발굴하고 1990년, 뤄톄원(羅哲文) 등의 장성 전문학자들에 의한 실지조사에서 명나라 시기 장성의 동쪽 끝 기점으로 인정되었다.
이때까지 산하이관이 동단이라 알려졌지만 이 발견으로 인해 중국 장성은 1000여 km 연장시켜 호산을 장성의 동쪽 끝 기점으로 바꿨다.
1992년에 380만 위안을 투자하여 600여 m의 호산장성을 수리하고, 처음으로 장성 최동단의 전모가 나타나게 되었다. 더욱이 2000년, 2,230만 위안을 투자하여 1000여 미터 장성의 주체 복구를 완성했다.
호산으로부터 동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까지 이르는 장성은 연나라의 장성으로, 후일 진나라와 연결되는 연진장성이다.
호산장성(虎山长城)에 대한 사실(史實)
실제로는 명나라의 장성이 아니라 고구려가 세운 박작성(泊灼城)으로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동북공정이다.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를 제압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만주가 옛날부터 중국의 지방정권 내지 영토임을 과시 및 홍보하기 위한 공작이다.[위키백과]
자위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산하이관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