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마추피추,중앙광장,해시계,와가의 구역,아구아깔리안테스,오얀따이땀보,San Augustin El Dorado,쿠스코(2019)
마추픽추 정문
Machu Picchu Puerta de acceso a la ciudad 마추픽추로 들어서는 통로
마추픽추 정문은 바깥에서 보면 일반적인 잉카 건축 양식에서 보이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쪽에서 보면 위쪽에 둥근 고리 모양의 돌출부가 있고 좌우로는 비슷한 높이에 홈이 나있어 안쪽에서 여는 문이 달려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또한 위쪽에 달려 있는 돌출부에는 적의 침입을 대비한 도르래 형태의 바윗돌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ENJOY 남아메리카]
♣ 마추픽추(Machu Picchu)
잃어버린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교수인 하이 방열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 서양 학자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수 꿈에 묻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마추피추를 "잃어버린 도시" 또는 "공중도시"라고 부르며, 공중도시라고 불리는 이 유는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추픽추는 총면적이 5m으로 도시 절반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유적 주위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완전한 요새의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산꼭대기에 세워졌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습니 다. 마추픽추에는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산정과 가파르고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입니다.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곳에는 태양의 신전, 산비탈의 계단식의 밭, 지붕없는 집,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 시계, 콘도르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 아 있습니다.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며,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합니다. 각 변의 길이가 몇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습니다. 돌은 종이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으며,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 시설까지 갖추고 있으며, 이곳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여행책자]
수준 높은 건축술로 건설
건축 유산 미스터리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인 상과 하, 우측과 좌측, 남성과 여성, 시간과 공간의 두 기준에 따라 절묘한 위치에 의도적으로 건설되었다. 마추픽추는 와이나픽추(Huayna Picchu)라는 원뿔 모양의 봉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데 와이나픽추는 잉카인들이 토템으로 신봉하는 두 동물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와이나픽추 봉우리를 앞에서 보면 퓨마의 형상으로 보이며 좌측에 있는 세 개의 작은 봉우리는 콘도르(condor)가 날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잉카인들에게 와이나픽추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성한 산으로,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대지에 신성한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잉카인들은 신성한 도시의 모든 시설을 일부러 어떤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배치했다. 도시 전체의 모습이 마치 날개를 활짝 펴고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이다. 와이나픽추에서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들은 무질서와 방탕에 빠지기 쉬우므로 태양이 다양한 색깔의 깃털을 가진 새를 보내 영혼들을 위무해준다고 한다.[다음백과]
★와이나픽추 Huaynapicchu 와이나픽추에서 마추픽추의 경관을 !!!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과 잘 어울리게 해발 2,700m의 높이로 기세 좋게 솟아 있다. 마추픽추의 북쪽에서 마주하고 있는 와이나픽추에 올라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면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환상적인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는 2시간 이상의 트레킹과 아슬아슬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좁은 등산로를 따라 때로는 양옆이 절벽에 가까운 구간도 통과할 수 있는 담력이 필요하다.
와이나픽추는 하루 입산 가능한 인원이 400명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오전부터 인원이 차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와이나픽추를 오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와이나픽추 입구에서 신상 정보를 적은 후 등반을 시작하며 13시를 전후해 입산을 마감하고 16시 전에는 하산을 완료해야 한다. [Daum백과] 와이나픽추 - ENJOY 남아메리카, 합병헌 외, 넥서스
마추픽추 태양의 신전
Machu Picchu El Templo del Sol
마추픽추의 심장
거대한 자연석 위에 탑의 형태로 우뚝 세워져 있어 여느 건축물과도 한눈에 구별이 되는 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석벽과 탑 특유의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모습은 쿠스코의 산토 도밍고 교회에 일부 남아 있는 태양의 신전을 떠올리게 한다. 잉카 제국의 새해는 1월 1일이 아닌 6월 21일로 남아메리카 3대 축제로 손꼽히는 태양의 축제도 이 시기에 맞추어 열리는데, 그날이 되면 태양의 빛이 신전 중앙의 창문으로 딱 맞추어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러 몰려든 여행자들과 사진 작가들로 더욱 붐비는 때가 그날이다. 신전을 건축하는 데 있어 그런 부분까지 고려한 잉카인들의 세심함이 더욱 돋보이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ENJOY남아메리카]
마추픽추 채석장
Machu Picchu La Pedrera
잉카인들의 현명함을 확인하려면
정문에서 똑바로 나아가면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채석장이 왼편에 나타난다. 바위들 중에는 일렬로 홈이 패인 채 직선으로 쪼개지다 만 것도 있는데 이를 통해 잉카인들이 금속 도구가 없이 어떻게 바위를 다듬었는지 과학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먼저 바위에 원하는 방향으로 홈을 여러 개 판 다음 홈 안에 나무를 넣고 물을 부어 팽창하는 힘을 이용해 바위를 쪼갰던 것이다. 이후 모서리와 표면을 다듬어 집을 짓거나 벽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그들의 석조 기술과 건축 문화를 발전시켰다.[ENJOY남아메리카]
마추픽추 신성한 광장과 세 창문의 신전
Machu Picchu Plaza Sagrada y Templo de las Tres Ventanas
세 개의 신전이 모여 있는 곳
해시계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기 전 길목에 위치한 신성한 광장은 세 개의 신전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세 창문의 신전은 잉카의 초대 황제인 만코 카팍이 태어났다고 전해져 가장 유명해진 곳이다. 그 외 남쪽에 위치한 제사장의 집은 문이 있었을 법한 공간이 비워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집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쪽에 있는 주신전은 삼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에 폭이 4m가 넘는 제단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들어 벽면 한쪽이 살짝 무너져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호선이 쳐져 있다.[ENJOY남아메리카]
마추픽추 계단식 밭
Machu Picchu Zona Agrícola
지형의 제약을 극복한 잉카인의 지혜로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계단식 밭은 마추픽추의 동쪽 3분의 1 이상과 서쪽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1.5~2m 정도로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으며 평지가 없는 지형 조건을 극복한 잉카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고산 지대 기후 조건에 적합한 옥수수, 감자, 코카 등을 재배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서쪽에 위치한 계단식 밭은 경사가 유난히 가파른 곳으로 내려다보기만 해도 겁이 날 정도인데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ENJOY남아메리카]
해시계 인티와타나
Observatorio Astronómico Intihuatana
마추픽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유적
태양을 묶어두었다는 기둥, 안티우 아타나이다. 안티우아타나는 화강암 으로 만들어 졌고 넓은 바위위에 뾰 족하게 솓은 돌이 있는 모양이다. 케 추아 어로 안티는 태양을 뜻하고 우 아타나는 연결이란 뜻을 가지고 있 다고 한다. 즉 해시계와 비슷한 역할 을 했는데 여기서 의식도 치르며 성 스럽게 여긴 바위라고 한다. 1년에 두번 춘분과 추분에는 그림자가 생 기지 않는다고 하니 신비롭다. 안타 까운 점은 이 안티우아타나에서 2000년 9월 11일에 쿠스코에서 유 명한 쿠스케냐 맥주 회사가 광고를 찍다가 크레인에 달린 카메라가 떨 어지면서 바위를 파손시키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 바위 끝부분 모서 리가 부러진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에는 이 성스러운 바위를 만지면 태 양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손을 갖다댔다는데 지금은 관리하는 사람이 삼엄한 경 계태세로 바위를 지키고 있었다.[구글검색]
신성한 광장을 지나 살짝 솟아 있는 언덕의 계단을 오르면 마추픽추 유적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시계 인티와타나를 만날 수 있다. 인티와타나는 중앙에 튀어 나와 있는 기둥을 제외하면 마추픽추 입구에 있는 장례용 바위와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기둥의 그림자를 통해 해시계의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태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속설로 많은 여행자들이 인티와타나를 매만지고 가는 덕에 현재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보호선이 둘러져 있다. 서쪽으로는 계단식 밭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은 빙엄이 기어올라 마추픽추를 발견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내려다보면 엄청 가파른 경사면이라 새삼 빙엄의 용기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ENJOY남아메리카]
인티와타나 Intiwatana
마추픽추 유적의 도시 안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하는 장소로, 동서남북을 완벽하게 나타낸 커다란 돌 하나가 놓여져 있는 가장 신성한 장소다. '인티와 따나'는 케추아어로 '태양을 묶어놓은 기둥'으로 해석되며 당시 잉카인들은 태양의 궤적이 바뀌면 큰 재앙이 온다고 믿었기에 이 돌을 이용해 태양을 묶어놓는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의 이들에게 인티와타나는 가장 신성한 도구로 여겼으며 잉카의 주요 도시에는 인티와타나가 신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개 종을 시키기 위해 스페인 군대는 잉카의 도시를 점령할 때 가장 먼저 인티와타나를 파괴했으며, 마추픽추 유적은 스페인 군대가 정복하지 못하고 탐험가가 발견한 이유로 현재 가장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인티와타나가 놓여져 있다 고 한다.[네이버지식백과]
마추픽추 대광장
Machu Picchu Plaza principal
평화롭게 노니는 야마 무리에서 사진을
마추픽추 중앙에는 푸른 대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먼 옛날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집회를 갖고 운동을 하는 집단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했다. 광장 양쪽으로는 돌을 쌓아 만든 두 개의 단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의 북쪽 끄트머리로 가면 야마 무리가 평화롭게 노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중 새끼 야마가 가장 인기 있는 사진 모델이다.[ENJOY남아메리카]
마추픽추 성스러운 바위
Machu Picchu Roca Sagrada
마추픽추의 북쪽 끝으로 가면 뽀죡한 삼각 지붕의 건물 두 개 사이로 높이 3m, 폭 6m가 넘는 거대한 바위가 세워져 있다. 초가지붕이 얹어져 있어 소박한 느낌을 주는 양 건물은 마치 성스러운 바위를 호위하듯 양옆을 지키며 자리 잡고 있다. 성스러운 바위는 와이나픽추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뒤로 보이는 산맥의 윤곽과 비슷해 신기하게 느껴진다. 많은 여행자들이 성스러운 바위의 기를 받고자 양손을 바위에 갖다 대고 기원을 한다. 와이나픽추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성스러운 바위를 찾으면 된다. 그 뒤로 와이나픽추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ENJOY남아메리카]
마추픽추 계단식 밭
Machu Picchu Zona Agrícola
지형의 제약을 극복한 잉카인의 지혜로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계단식 밭은 마추픽추의 동쪽 3분의 1 이상과 서쪽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1.5~2m 정도로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으며 평지가 없는 지형 조건을 극복한 잉카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고산 지대 기후 조건에 적합한 옥수수, 감자, 코카 등을 재배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서쪽에 위치한 계단식 밭은 경사가 유난히 가파른 곳으로 내려다보기만 해도 겁이 날 정도인데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ENJOY남아메리카]
마추픽추 콘돌 신전과 감옥
Machu Picchu Templo del Cóndor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유적
기술자 거주지 옆에는 콘돌 신전과 그 지하에 설계된 감옥이 있다. 천연석으로 이루어진 콘돌 신전을 마추픽추 유적 중에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자랑하는 유적으로 손꼽는다. 바닥에는 콘돌의 부리와 머리 모양을 빼닮은 돌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이를 중심으로 커다란 양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특히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크기의 웅장한 날개는 마치 일부러 그려 넣은 듯한 다채로운 색상이 줄무늬처럼 들어가 있어 더욱 생동감을 더한다. 콘돌 신전 밑 지하에는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가 나 있는데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돌의자와 작은 공간이 존재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 안에 죄수를 가둬놓고 잔인한 고문을 가했다고 전해진다.[ENJOY남아메리카]
아구아 깔리엔테스
(Aguas Calientes)
<참고자료>
페루 마추픽추 돌의 마술사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가 몇 미터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특히 중요한 건물은 돌의 표면을 젖은 모래에 비벼서 매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종이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연결되어 있다.
200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유적지 대부분은 가옥이나 저장고인데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했고 화강암으로 건설했다. 출입문은 사 다리꼴이고 지붕은 3,500미터 이상의 고산 지에서만 자라는 이추(Ichu)라는 짚으로 만 들어 덮었다(현재 복원된 건축물의 지붕도 이추로 덮었음). 정방형의 공동 마당을 가운 데 두고 열 채씩 무리로 지어진 이층집들은 좁은 도로나 다소 돋운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지의 마추픽추에서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잉카인들은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돌을 이용하여 고랑을 만들었다. 돌을 다루는 잉카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공동 마당에는 커다란 맷돌, 부피가 큰 농기구, 연료로 사용하는 라마의 배설물 저장소가 있었고
'추뇨(잉카인들의 주식으로 감자 말린 것)'를 만들기 위해 태양과 서리에 번갈아 노출되도록 감자를 널었다. 말린 고기 등은 줄에 매어 집 바깥에 매달았다.
종교 건축물은 주 광장 둘레에 축조했다.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고 반원형의 탑이 있는 태양 신전,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제1신전 그리고 '왕의 묘'가 그것이다. 왕의 묘는 잉카 최고의 신에게 헌정된 숭배의 장소로 추정하며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잉카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세 계단이 있는데 이는 지하(죽음), 지상(현 생), 하늘(신)을 의미한다. 신전 근처의 왕의 궁전에는 식당과 거실 등이 있으며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있다
마추픽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천문 관측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건축물이다. 거대한 돌 하나를 깎아 만든 인티와타나(Intihuatana, 케추아어로 태 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해시계와 유사한데 동짓날(남반구에서는 여름) 하루 동안 사제들은 여기에서 제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의자'를 갖고 있 다고 믿었다. 북쪽의 주의자와 남쪽의 보조 의자가 그것이다.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 잡을 때인 하지가 한 해의 시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 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달의 신전은 유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이 나픽추 중턱에 위치한다. 천연 동굴을 이용해 다섯 군데의 벽감을 만들고 부조를 장식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바위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옥좌가 있지만 전설 속의 황금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빙엄은 제단 구역에서 많은 인골을 발견했는데 대다수가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선택된 여자들이었다. 발견된 175구의 미라 중 80퍼센트가 여자였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사제와 아이들이었다. 빙엄은 현장에서 잉카제국을 상징하는 도자기 · 금속 · 섬유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마추픽추가 어떤 정책적인 결단(군사 전략적 측면, 실용성 미비)으로 포기되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하부에서 수많은 도자기 파편을 발견했는데 이는 희생 또는 제사의 의식 중에 도자기를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한다.
학자들은 태양신의 후예로 숭배받은 잉카제국의 아홉 번째 통치자인 '세상의 개혁자' 파차쿠텍이 마추픽추를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을 근거로 마추픽추가 망코 카팍이 세운 잉카 최초의 수도라고 추정하 는 학자들도 있다. 망코 카팍이 “내가 태어난 곳에 세 개의 창이 있는 석조 벽을 세우라"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또한 빙험의 발굴 기록에 따르면 잉카 이전의 유물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잉카인인 남자 네 명과 여자 네 명은 '파타리탐보'라는 동굴에서 나타났으며 남자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망코 카팍이다.[다음백과,건축유산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