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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모로코,카사블랑카,라바트,페스,탕헤르(1.6-1.8)

여행복사꽃 2022. 11. 13. 22:51

▲ 두바이 국제공항

Dubai International Airport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아랍에미리트 국가 중 가장 인구가 많으며 영토는 두번 째로 크며, 남쪽과 서쪽은 아부다비, 동쪽과 동북쪽은 샤르자 같은 토후국들에 에워싸여 있다. 1966년 파트 연안 유전이 두바이 시 바로 동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페르시아 만에서 발견된 후 두바이는 아주 부유한 나라가 되었고, 2000년 이후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빌딩과 인공섬인 팜 아일랜드 등 혁신적이며 대규모의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다음백과]


▼모로코 Morocco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국가로 동쪽과 남동쪽은 알제리, 남쪽은 서사하라와 접해 있으며, 북쪽은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국민 대부분은 아랍-베르베르인이며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사용한다. 입헌군주국으로 헌법에 의해 왕에게 최고 행정권이 있고 왕이 총리를 임명한다. 7세기말 이슬람 세력의 침략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다. 이후 알모라비데·알모아데 왕조 등 여러 왕국이 통치했다. 19세기에 유럽 열강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1912년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56년에 독립했다.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유일한 왕조이다.[다음백과]

▼무함마드 5세 국제공항

무함마드 5세 국제공항(Mohammed V International Airport)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로얄 에어 모로코, 제트포유, 리저널 항공의 허브 공항에 속한다. [다음백과]

▼카사블랑카

1468년 파괴된 토착민 베르베르족의 마을에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새 도시를 건설하고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로 명명했다.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18세기말 재건되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상인들이 정착했으며, 프랑스인이 다른 유럽인보다 많아지면서 메종블랑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07년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했으며, 1912~56년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3년에는 이곳에서 연합군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제일의 휴양지이기도 하다. [다음백과]

카사블랑카





▼하산2세 사원
Hassan II Mosque

하산 2세 모스크는 꾸란에 나오는 '알라의 성좌는 물 위에 있다'라는 구절에 따라 카사블랑카 서쪽 해변에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 2헥타르의 간척지 위에 모스크를 건설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및 메디나에 있는 모스크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모스크이다. 핫산 2세(재위 1961~1999)가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7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였는데, 2만 5000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고, 카사블랑카 시내 어디서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대지 8,100㎡에 세워졌으며 200m 높이로 모스크 중 세계에서 가장 높다. 건물 지붕은 약 6분에 걸쳐 개폐되도록 되어 있다. 규모나 실내장식에서도 세계 최고의 모스크로 꼽히는데, 모로코 최고의 실내장식 조각 기술자 3,300명이 6만 7000㎡의 석고, 5만 3000㎡의 목재를 사용하여 1만㎡에 달하는 모로코 전통조각을 완성해 세기의 걸작을 만들어냈다.[네이버 두산백과]

이 모스크의 미나렛(이슬람교 사원의 외곽에 설치하는 첨탑.)은 그 길이가 210m에 달해 세계에서 두 번째 높습니다. 거대한 미나렛으로 인해 카사블랑카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모스크를 건설한 인물은 모로코의 국왕이었던 하산 2세인데, 1986년 7월 30일에 착공을 시작하여 1993년 8월 30일 무함마드의 생일(물론 무함마드의 생일은 양력이 아니라 '히즈라력'을 기준으로 하지만)을 하루 앞두고 개장하였습니다.


하산 2세는 모로코의 국왕으로 쫓겨난 다른 북아프리카 아랍국가들의왕과는 달리 수차례의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생존왕'인데, 특히 그가 탑승한 보잉 727기가 반란군 전투기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반란군 전투기에 "폭군이 죽었다. 쏘지마라" 교신하여 격추당할 위기를 넘기고 반란군을 진압한 '전설적인' 이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하산 2세는 1961년 부친 무함마드 5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직후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영묘로서 거대한 모스크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국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모금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압적인 성금 모금이 이어져서 왕실에 대한 불만이 크게 증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불만에도 불구하고 결국 6만 7000 제곱미터의 석고, 5만 3000 제곱미터의 목재를 사용하고 1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모로코의 전통조각을 완성하여 모스크를 완공하였습니다.


이 모스크의 설계는 모로코에 살고 있던 프랑스인 미셸 핀소가 설계하였습니다.


▼핫산 2세 모스크


▼대서양


▼라바트 Rabat

라바트 정식 명칭은 라바트엘파티프(Rabat el-Fatif)이다. 대서양에 면한 카사블랑카 다음가는 대도시이다. 카사블랑카의 북동쪽, 대서양 연안의 부레그레그강(江) 하구 좌안에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었으나, 현재의 시가는 10∼11세기에 이슬람교도인 베르베르인이 이단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 기원이다. 성벽에 의해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누어지는데, 성내에는 마디나(이슬람 시장 거리)와 밀라(유대인 거리)가 있고, 12세기 이래의 카스바데우다이아문(門)과 하산 사원의 첨탑 등이 남아 있다. 신시가에는 왕궁·정부청사·외국공관·유럽인 거리·라바트대학 등 유럽풍과 아랍풍의 건조물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이다.[네이버지식백과]



▼모로코 왕궁

Morocco Royal Palace


♣ 라바트 왕궁 : 1999년 37년간 집권하던 핫산 2세가 사망하고, 현재 모하메드 6세가 거주하는 곳이다. 정문은 아랍식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물레이 하산 거리와 무함마드 5세 거리가 만나는 곳에 있다. 18세기 말에 세워졌으며, 1999년 즉위한 시디 모하메드 6세(Sidi Mohammed VI)가 살고 있다.

흰 벽과 녹색 지붕의 호화롭고 장대한 왕궁으로, 총리 집무실이 있으며 모든 국가 공식행사가 이곳에서 치러진다. 근처에는 국왕이 기도하러 다니는 아루파스 모스크가 있다. 왕궁을 둘러싼 성곽은 해안까지 이어졌으며, 약 10m 높이의 성곽 곳곳에 위치한 성문은 위병이 지키고 있다. 성문은 차량들의 통행하는 출입구로 이용되지만 야간에는 폐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로코 왕궁 [Morocco Royal Palace 두산백과]



▼모하메드 5세의 묘

무함마드 5세 묘

모로코 라바트의 현 국왕 무함마드 6세의 조부 무함마드 5세 전 국왕의 묘.

모로코의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조성된 무덤으로, 대서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둥근 돌기둥이 우뚝 서 있고, 내부는 1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하에 3개의 관이 있다.


건물 중앙의 관은 모하메드 6세의 조부인 무함마드 5세의 것으로, 무함마드 5세는 1912년 이래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의 선두에서 싸우고 1956년 3월 독립을 성취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 후 모로코 근대국가 건설에 힘쓰다가 1961년에 죽었는데, 이 묘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400여 명의 장인들이 모여 무려 7년 동안 정성 들여 완공하였다.


왼쪽 관에는 1999년 7월 23일 하산 2세(모하메드 6세의 부왕)의 시신, 오른쪽 관에는 모하메드 6세의 작은 아버지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그밖에 다른 묘지에도 역대 왕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으며, 실내장식이 매우 훌륭하다




▼모로코 페스 왕궁 Royal Palace of Fez

모로코의 페스왕궁은 1276 년 마리니드 왕조의 왕실 성채를 기초로 지어진 모로코 왕의 왕궁입니다.


모로코의 국왕이 페스에 방문하

면 머무는 왕궁으로 여행자에게는 한쪽 면 만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왕궁 내부는 입장할 수 없고, 정문을 중심으로 화려한 패턴 타일의 외곽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워낙 화려하고 다채롭다보니 왕궁 내부를 볼 수 없어도 늘 여행객으로 항상 북적입니다.


왕궁은 초록색의 지붕과 크고 작은 아치 형의 문이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슬람문화는 우상을 금지하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장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왕궁이라는 특별한 장소의 정문임에도 화려한 패턴 타일 장식만 보일 뿐그 앞에 아무런 동상도 볼 수 없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그림처럼 보이는 아랍어와

식물의 줄기, 잎을 기하학적인 무늬로 만들어 건물의 벽과 기둥을 장식했습니다.


페스왕궁은 알마크젠 왕궁이라 고도 불리는데, 중세 시대 모로코의 수도였던 곳이 페스였기 때문입니다.



▼페스 Fes

수도 라바트의 동쪽 160km, 리스 산계(山系)의 남쪽 기슭에 있다. 801년 이드리스왕조의 제2대 이드리스 2세가 수도로 삼고, 마그레브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276년에 마리니드왕조가 새로운 페스를 건설하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강가의 옛 도시가 페스알발리, 왼쪽의 새로운 도시가 페스알제디드이다. 대서양 연안의 카사블랑카나 라바트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서 독자적인 상공업이 발달되고 있다. 857년에 창립한 이슬람신학대학과 아랍문예 중심의 알 카라윈대학도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페스 메디나 옛 골목풍경

페스의 메디나 Medina of Fez

모로코의 옛 수도이자 문화·종교 중심지로, 중세 이슬람 도시의 원형을 보여주는 도시이다. 9세기 초 이드리스(Idriss) 왕조의 이드리스 2세가 왕국의 수도로 삼았고, 메리니드(Merinides) 왕조 때인 13~14세기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정치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상실했지만, 종교, 문화 중심지로의 위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페스의 옛 시가지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페스 옛 시가지의 가장 큰 특징은 복잡한 미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외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복잡한 미로로 도시를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페스의 미로는 90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미로의 좁은 골목에서 통행하기 위해 마주보는 집의 대문을 반드시 엇갈리게 배치하고 주요 운송수단으로 당나귀를 이용한다.


이밖에 모로코식 전통 염색 양식을 고수하고 있는 가죽 염색공장과 이슬람 사원, 신학교, 왕궁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옛 시가 중심에 위치한 카라위인(Kairouyine) 모스크는 이드리스 2세가 9세기 초에 건설한 것이다. 이어 859년에는 카라위인 대학이 설립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힌다. 또한 1280년에 세워진 페스에서 가장 오래된 세파리네 신학교(Medersa Seffarine), 1357년에 세워진 부 이나니아 신학교(Medersa Bou Inania) 등이 유명하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