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3일(월) 시드니(오후)세3대 미항인 시드니의 아름다운 시내 관광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릿지 → 시드니 타워 → RYDGES PARRAMATTA HOTEL
♣ 1월 24일(화) 시드니 기상 및 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 → [KE122 09:00] 시드니 출발 / 인천 향발 (약10시간 45분 소요) [17:40] 인천국제공항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Sydney Opera House in Australia
♣ 우드손 Jørn Utzon
덴마크의 건축가, 1918. 4. 9.코펜하겐 출생.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설계
1956년에 새로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설계경기에서 그의 극적인 설계가 1등으로 당선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건설공사 때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그중 대부분은 설계의 혁신적 특성인 일련의 돛 모양 셸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1966년에 이 사업에서 손을 뗐으나 1973년 9월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역동적이면서도 창의적이나 문제점이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설계로 가장 유명하다.
코펜하겐 건축학교에서 공부한(1937~42) 뒤 스톡홀름에서 3년간 지내면서 스웨덴의 건축가 에리크 군나르 아스풀룬드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공부한 적이 있으며 1946년에는 6개월 동안 핀란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르 알토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초기의 주요작품으로는 덴마크의 할레베크(1952)와 홀테(1952~53)에 있는 자택을 들 수 있다.
그는 또한 헬싱괴르 근처(1956)와 북부 셸란의 프레덴스보리(1957~60)에 있는 2개의 주택단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주택단지는 모두 주변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코펜하겐 근교에 지은 바그수에르 교회(1976)는 농장건물이 모여 있는 모습이다. 그는 1978년에 영국 왕립건축가협회가 수여한 골드 메달을 비롯해 자신이 설계한 작품들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다음백과]
▲ 완벽한 곡선의 미학 오페라하우스
베넬롱곶에 있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주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21세기를 향해 가는 문화적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 모험은 전례가 없어서 시공상의 어려움과 예측할 수 없는 공사비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일컫는 시드니에 건설된 건축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페라하우스는 그 탄생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 1955년 오스트레일리아는 시드니를 상징할 건축물을 건설하겠다면서 오페라하우스 건축을 위한 세계적인 공모전을 발표했다. 이에 32개국에서 232점이 응모했다.
1957년 1월 29일 덴마크 건축가 외른 오베르그 우드손은 당선 소식을 들었는데 뜻밖의 일이었다. 그의 스케치는 1차 심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런데 심사위원인 세계적인 건축가 핀란드의 에로 사리넨은 제대로 된 작품이 없자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수 없다며 낙선된 작품들을 다시 검토했다. 이렇게 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우드손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드손의 작품은 하늘과 땅과 바다 어디에서 보아도 완벽한 곡선을 그린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는 이 아이디어를 부인이 잘라준 오렌지 조각에서 얻었다. 그는 오렌지 조각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바로 이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드손의 스케치는 건축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건축상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복잡한 오렌지 껍질 모양의 지붕 구조를 구현할 구조방식과 토대의 과중함이 문제였다. 그러나 우드손의 동향인 오베 아루프가 지붕 구조를 조립식으로 변형함으로써 누구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구조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해법은 조개껍질(셸)의 각 부분을 하나의 구면(球面)에서 그대로 잘라내는 것이었다.
근본적인 기하학적 문제가 해결되자 미리 제작한 리브에서 조개껍질들을 만들 수 있었다 조개껍질의 모든 부분은 현장에서 성형했다. 사전에 성형한 리브들을 케이블로 꿰어 압력을 가해서 아치를 만드는 식이었다. 완성된 아치는 부채꼴로 펴서 조개껍질의 각 면으로 만들었다.
건설 기간과 공사비도 시빗거리였다. 원래 2년으로 예정되었던 건설기간이 16년으로 연장되었고 건축비용은 원래 350만 달러였지만 최종적으로 5700만 달러가 예상되었다. 공사비가 증가한 것은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지붕을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 현실적인 공사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각계의 기부금과 오페라하우스 복권을 발행하여 추가 예산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공사비보다 15배가 추가되었음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964년 정부가 바뀐 후 새 정부는 우드손에게 실내 공사비를 줄일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우드손이 한마디로 이를 거부하자 건축주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우드손을 건설에서 제외하고 세 명의 젊은 오스트레일리아 건축가 홀 · 토드 · 리틀모어사에게 작업을 맡겼던 것이다. 우드손은 시드니를 떠나면서 다시는 자신이 설계한 오페라하우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공사는 엄청난 파문으로 일그러졌지만 우드손이 당선 소식을 들은 날부터 16년이 흐른 후 서로 다른 높이의 하얀 조개껍질 열 개(가장 높은 것은 68미터)가 시드니 하늘에 솟아올랐다. 지붕은 무게가 15만 8000톤이고 곰팡이가 슬지 않아 닦을 필요가 없는 스웨덴 타일 100만여 개로 덮여 있다.
조개껍질 지붕 아래에는 2679석을 갖춘 콘서트홀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식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1973년 10월 20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되어 더욱 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우드손은 자신이 공언한 대로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도 논란이 무척 많았지만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4000여 년 동안이나 세계의 경이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그러하리라고 믿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문화센터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파라마타강으로 튀어나온 베넬롱곶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축물은 1만 8000평방미터 대지 위에 세워졌고 4만 5000평방미터의 화강암 포장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시드니가 왜 세계 3대 미항인지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이 건축물은 정면부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도달하려면 100미터나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창문과 지붕이 벽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데 지붕을 의미하는 투구들은 여러 층의 거대한 토대 위에 놓였고 토대 안에는 여러 개의 공연장과 부속시설이 들어서 있다.
오페라하우스는 준공 후에도 구설이 끝이지 않았다. 우드손이 퇴출된 뒤 새로 만든 계획안의 기조는 겉모습은 당초 계획대로 하되 내부는 우드손의 계획을 철저하게 변경하여 예산을 절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콘서트홀은 오페라홀이, 오페라홀은 콘서트홀이 되었고 연극무대는 영화관이 되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우드손의 계획을 줄이고 생략하고 단순하게 만든 것인데 방문객과 오페라하우스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장소의 협소함, 너무 높은 계단, 너무 작은 홀, 형편없는 음향시설 등을 불평했다. 특히 이 건축물은 당초 오페라하우스가 목표였으나 오페라하우스에 걸맞은 적정시설을 갖추지 못해, 록콘서트 · 영화상영 · 집회와 실내악연주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고전 오페라를 올리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서 근래 우드손의 원래 설계대로 오페라하우스의 내부 건축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준공된 지 35년도 채 지나지 않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물론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으며 오스트레일리아대륙 전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소금기가 있는 해풍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보수를 받아야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명분으로 기와 8500개를 교체했는데 이 수리 작업에도 당초 예상된 공사비를 훨씬 초과한 65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참고로 우드손은 준공 20주년 기념식에 초대되었을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출처: 다음백과 세계불가사의 여행]
▼ 하버 브리지 Harbour Bridge
▲ 옷걸이를 닮은 시드니의 대표 다리
둥글게 굽은 아치가 꼭 옷걸이 같다고 해서 낡은 옷걸이(Old Coathanger)라 불리는 하버 브리지는 아치를 갖고 있는 다리 중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다리다. 녹슬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페인트만도 매해 3만 리터가 넘는다. 8차선의 자동차 도로와 2차선의 철도뿐 아니라 양옆으로 자전거 겸용의 인도가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산책하는 데 20분 정도 걸리니 도전해 볼 만 하다.
하버 브리지는 1923년 착공에 들어가 9년 만인 1932년 3월 19일에 개통되었다. 개통 당시 다리 건설에 쓰인 비용이 1000만 달러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1988년까지도 청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다리는 1920년대 불어닥친 경제 대공황 시대에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하버 브리지는 ‘철의 숨결’이라고도 불린다.
하버 브리지 아치의 천장 길이는 503m, 전체 길이는 1149m이며, 중앙에서 30m 떨어진 두 개의 받침대가 아치를 떠받치고 있다.
개통 당시 2개의 인도, 4개의 철도, 중간 차도로 구성되었으나 동쪽의 철도는 1958년 6월에 고속도로로 바뀌었다. 현재는 8차선 차도와 2개의 철도선, 1개의 인도, 1개의 자전거 전용 도로를 갖추고 있다.[다음백과]
▼ 오페라 하우스 내부 관람
▼ 오페라 하우스 광장에서 바라본 하버 브리지 Harbour Bridge
▼ 오페라 하우스 입구모습
▼ 시드니 타워 아이
The Sydney Tower Eye
Westfield Sydney, Level 5/108 Market St, Sydney NSW 2000 오스트레일리아
▲ 시드니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전망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타워 중 하나로 피트 스트리트 몰의 입구에 있다. 지상으로부터 250m 높이이며, 훌륭한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레스토랑, 카페 라운지, 오지트랙 디스커버리, 스카이 워크로 구분되어 있다.
본다이 비치, 퀸즐랜드의 열대강,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스포츠와 아웃백의 대자연을 탐험하는 4D 시네마 익스피리언스(4D Cinema Experience)는 입장 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260m 높이의 시드니 타워 외곽을 따라 걸으며 360도의 다양한 전망을 실외에서 감상할 수 있는 스카이 워크는 짜릿한 체험 그 자체다. 스카이 워크에 참여하려면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다음백과]
♣ 시드니 시내관광
▼ JCDecaux Australia (광고대행사)
L6/1 York St, Sydney NSW 2000 오스트레일리아
▼ Van Cleef & Arpels
캐슬레이 스트리트
(귀금속 상점)
112 Castlereagh St, Sydney NSW 2000 오스트레일리아
▼ Myer Sydney City
마이어 시드니 시티
(백화점)
436 George St, Sydney NSW 2000 오스트레일리아
▼ Witchery(여성의류점)
Shop G3, Met Centre, 273 George St, Sydney NSW 2000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ZARA(의류점)
cnr Sydney pitt street mall and, 77 Market St, NSW 2000 오스트레일리아
♣ 시드니 야경
▼ 달링 하버
Darling Harbour
케이프 볼링 그린 라이트(Cape Bowling Green Light ).
퀸즐랜드 에어( Ayr ) 에서 약 30km(19마일) 떨어진 길고 낮은 모래톱 으로 끝나는 긴 곶인 케이프 볼링 그린(Cape Bowling Green)에 위치한 활동적인 등대 입니다 . 등대는 모래톱 바닥 근처의 곶 끝 부분에 있습니다. 1874년에 세워진 이 위치의 첫 번째 등대는 여러 번 옮겨졌습니다. 브리즈번 에서 조립식으로 제작되어 해당 위치로 배송되었고 해안 침식 으로 인해 두 번 이동 했으며 최종적으로 시드니 달링 하버 에 있는 호주 국립 해양 박물관 으로 전시를 위해 옮겨졌습니다..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