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과 미술관 (Vatican Museum and Galleries)
바티칸의 교황청 및 여러 건물들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15세기초 이래 교황들이 수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은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세웠으며 교황 비오 6세 때 확장되었다. 이곳에는 교황 율리오 2세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교황의 고대 조각 소장품들이 전시돠어 있다.
또한 19세기 교황 비오 7세가 세우고 조각가 안토니오 카바노가 설계한 키아리몬티 조각관도 고대 조각품 전시관이다. 이것은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브라만테가 디자인한 미술관 안에 있는 전시관과 신증축관(브라치오 누오보), 뛰어난 고대 비명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관(라피데리아) 등이다.
1836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세운(1924 개축) 그레고리아노 에트루스코(이탈리아 중서부 고대국가) 박물관에는 에트루스카 발굴물과 레골리니-갈라시 무덤에서 발굴된 보석들과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레고리아노 에트루스코 박물관). 그레고리오 16세가 세운 이집트 박물관도 1839년에 이르러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1797년 교황 비오 6세가 세운 피나코테케는 1932년부터 현재의 미술관(교황 비오 11세가 세움)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우수한 이탈리아 종교화, 러시아와 비잔틴 회화들도 소장되어 있다.
1956년에는 근대 미술품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르누아르, 쇠라, 반 고흐, 루오, 마티스, 피카소 등 19, 20세기 화가들의 비종교적인 작품들을 전시했다.
1973년 바티칸은 현대미술 박물관을 처음으로 개장했으며 바티칸 궁에 있는 65개 전시관에 유럽·미국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다음백과]
♣성 베드로 대성당
San Pietro Basilica
1506년 건립하기 시작해 1615년 완성되었다. 삼랑식 라틴 십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사도 베드로의 성골함을 덮고 있는 주제단 바로 위의 십자형 교차부에 돔이 올려져 있다. 교황의 교회로 쓰이는 이 대건축물은 중요한 순례지이다.
1506년 브라만테가 설계한 평면에 따라 건립하기로 했으나 라파엘로, 상갈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를 거쳐 완성되었다.
바실리카의 내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걸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베르니니의 천개, 성 롱기누스 조상 등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은 1989년까지 그리스도교 교회로서는 가장 큰 교회였다.[다음백과]
▼ 바티칸 솔방울 정원 Vatican Cortile della Pigna
바티칸 박물관에서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이곳밖에 없다. 정원의 정면에 솔방울이 있고 바로 뒤에 기둥이 있는 브라초 누오보 궁전이 있다. 가이드들은 이곳에서 본격전인 관람에 앞서 어느 정도 미리 이야기를 해 준다. 가이드가 없는 배낭여행자들은 공원 뜰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과 박물관 내부의 모습을 걸어놓은 판을 보면서 다른 관광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 도움이 된다. 그래서 또 뙤약볕을 맞아야 하니 모자는 필수!
거대한 솔방울은 높이가 약 4m에 육박한다. 중세 때 바티칸 대성당 앞에 있었는데 1608년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솔방울 위 둥근 돔 형태의 내부 벽감은 판테온을 모방한 것이다. 이 솔방울 장식 아래 기단은 3세기의 것으로 운동 선수의 모습이 새겨 있다. 양옆에는 2세기경의 공작이 있는데 복제품이다. 원본은 정원 맞은편의 브라초 누오보에 있다. 하지만 개방하지 않는다. 이 솔방울 조각 양옆의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중세 건물의 보편적인 양식이다. 바로 앞 분수 옆에 사자상이 있는데 기원전 4세기 이집트의 작품이다. 솔방울 상은 나중에 이집트 박물관을 관람하다가 다시 들어가서 볼 수 있다.[다음백과 ENJOY이탈리아]
▼아르날도 포모도로의〈천체 안의 천체(Sfera con Sfera) 1990년대의 작품
▼로마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고대 동상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틴어: 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년 7월 12일 ~ 기원전 44년 3월 15일)는 로마 공화국의 정치가, 장군, 작가이다. 그는 로마 공화국이 로마 제국으로 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네이버지식백과]
▼브라초 누오보 궁전
▼폰타나 델라 피그나 Fontana della Pigna
▲Fontana della Pigna 또는 간단히 Pigna ([ˈpiɲɲa] , " pinecone ")은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시국 에 위치한 Cortile della Pigna를 마주한 바티칸 벽의 광대한 틈새를 장식하는이전 로마 분수 입니다.
거의 4미터 높이 의 커다란 청동 솔방울 로 구성되어 한때 꼭대기에서 물을 뿜어냈던 피냐는 원래 이시스 신전 옆 판테온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 중세 시대에 구 성 베드로 대성당 의 안뜰로 옮겨졌다가 1608년에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그것이 서 있는 안뜰은 원래 교황 인노첸시오 8세 의 궁전 과 시스티나 예배당 을 연결하기 위해 도나토 브라만테 가 설계한 코르틸레 델 벨베데레 의 일부였습니다 . Bramante가 사망했을 때 건축가 Pirro Ligorio 는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안뜰을 닫기 위해 벽과 틈새를 추가했습니다. 바티칸 도서관 의 건설은 Cortile del Belvedere를 두 지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안뜰의 윗부분인 Cortile della Pigna는 분수에서 그 이름을 따왔습니다.
분수 양쪽에 있는 청동 공작새 는 지금은 산탄젤 로 성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무덤을 장식한 것 입니다. 원래 공작새는 브라치오 누오보 박물관 에 있습니다.[위키백과]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del Belvedere, Apollo Belvedere)
▲이조각상은고대 그리스 청동상 아폴론을 본뜬 대리석상이다.
▼헤라클레스 조각물
▼라오콘 군상
Laocoon' Group / Laocoon and His Sons
라오콘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아폴론 신의 점술사이자 신관으로, 헬레노스와 카산드라와 함께 트로이의 3대 예언자였다. 그는 신관의 의무인 독신을 어긴 죄로 아폴론이 보낸 바다뱀에 의해 아들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아폴론의 신관이었던 라오콘은 독신에 대한 의무가 있었고 이에 대해 맹세했으나 쌍둥이 아들을 낳아 아폴론의 노여움을 샀다. 아폴론은 제비를 뽑아 맡겨진 임무에 따라 아들들과 함께 포세이돈 신의 제단에 황소를 제물로 바치려던 라오쿤에게 포르케스와 카리보이아(또는 쿠리시아나 페리보이아)라는 두 마리의 큰 바다뱀을 보냈고, 그는 바다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무게에 깔려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또는 멜란토스)와 함께 죽었다.
라오쿤이 이러한 벌을 받은 이유에 관해서는 다른 설도 있는데, 이는 라오쿤이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인들이 놓고 간 목마를 성내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트로이인들에게 경고했던 것이 당시 그리스인들의 편에 서 있었던 포세이돈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전설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Aeneis)〉와 BC 2세기경 로도스 섬 출신인 3명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폴리도로스·아테노도로스가 만든 라오콘 상(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을 통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트로이 전쟁).[다음백과]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Perseus)
아르고스의 아크리시오스의 딸인 다나에와 제우스의 아들이다. 아크리시오스는 손자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졌다. 궤짝은 세리포스섬에 닿았고 페르세우스는 그곳에서 자랐다.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를 아내로 맞고자 흉계를 꾸며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쳐들어 폴리덱테스를 돌로 만들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를 구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페르세우스는 어머니와 함께 아르고스로 돌아갔는데, 그가 던진 원반에 맞아 결국 아크리시오스는 죽게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를 떠나 미케네를 건설하고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명의 후손을 남겼다.<요약>
아르고스의 아크리시오스의 딸인 다나에와 제우스의 아들이다. 아크리시오스는 손자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졌다. 궤짝은 세리포스섬에 닿았고 페르세우스는 그곳에서 자랐다.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를 아내로 맞고자 흉계를 꾸며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쳐들어 폴리덱테스를 돌로 만들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를 구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페르세우스는 어머니와 함께 아르고스로 돌아갔는데, 그가 던진 원반에 맞아 결국 아크리시오스는 죽게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를 떠나 미케네를 건설하고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명의 후손을 남겼다.
고르곤 중 하나인 메두사를 죽였으며, 바다 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를 구출했다. 아르고스의 아크리시오스의 딸인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의 아들이었다.
아크리시오스는 손자가 자기를 죽이게 되리라는 예언 때문에 갓 태어난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를 큰 궤짝에 넣어 바다로 던져버렸는데, 궤짝은 세리포스라는 섬에 닿았고 페르세우스는 그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다나에를 아내로 맞고 싶어하던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는 흉계를 꾸며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들 중에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페르세우스는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고르곤들을 지키는 자매인 그라이아들을 위협해 그를 돕게 한다. 즉 세 자매가 함께 쓰고 있는 눈 하나와 이빨 하나를 빼앗은 다음,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날개 달린 신발과 몸을 안 보이게 하는 하데스의 투구, 메두사의 목을 치는 데 쓸 휘어진 칼(또는 낫)과 잘린 머리를 담을 자루를 얻고 나서야 그들에게 눈과 이빨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다른 설에 따르면 그라이아 자매는 그를 저승의 님프들에게 안내한 일만 했고, 님프들이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들이 사는 곳을 알려주고 자루·신발·투구를 주었으며, 그에게 칼을 준 사람은 헤르메스라고 한다. 메두사의 눈을 보면 누구나 돌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아테나가 준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메두사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그 목을 베었다. 세리포스로 돌아온 페르세우스는 폴리덱테스와 그 부하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쳐들어 돌로 만들어버리고 어머니를 구했다.
페르세우스가 한 또다른 일은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에티오피아의 공주인 안드로메다를 구한 것이다. 안드로메다의 어머니인 카시오페이아는 바다의 님프인 네레이스들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뽐냈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그 벌로 에티오피아에 홍수를 일으키고 전염병이 돌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바다 괴물도 보냈다. 안드로메다의 아버지인 케페우스 왕은 바다 괴물에게 딸을 바치면 에티오피아가 질병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대로 했다. 지나가던 페르세우스는 이 아름다운 공주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는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해 바다 괴물을 돌로 만들어버리고 안드로메다와 결혼했다.
뒤에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치고 다른 장비들은 헤르메스에게 바쳤다. 아테나는 그 머리를 자기 방패에 달고 다녔다. 어머니인 다나에와 함께 고향인 아르고스로 돌아온 페르세우스는 원반 던지기 경기에 참가해 원반을 던지게 되었는데 그 원반이 우연히 아크리시오스에게 맞아 그만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그가 할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옛 예언은 적중했다. 페르세우스는 결국 아르고스를 떠나 미케네를 건설해서 거처로 삼고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명의 후손을 남겼다.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고대 및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회화와 조각에서 널리 쓰이던 주제였다. 고르곤의 머리를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거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재해석했으며, 영국의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독은 〈잘린 머리 A Severed Head〉에서 현대적인 상징으로 사용했다.[다음백과]
▼벨베데레 궁전의 뜰(Cortile Ottagonable)
벨베데레 궁전의 뜰(Cortile Ottagonable)은 팔각형 형태의 뜰로, 역대 교황들이 모아 놓은 조각상들이 있다. 이 곳에서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를 거쳐 1800년대까지 다양한 조각들이 전시돼 있는 ‘피오-클레멘타인 박물관(Pio-Clementine Museum)’을 접할 수 있다.
▼뮤즈의 방
▲천장에 음악과 미술의 신 뮤즈와 아폴론의 신화를 그린 코스프레화
▼벨베데레 토르소 torso
머리와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된 조각상.
식물의 줄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티르소스(thyrsos)’에서 유래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굴된 고전 조각상은 팔다리가 없는 채로 발견되었지만, 불완전한 몸체만으로도 절대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인체의 중요한 부분이 그 자체만으로 미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까지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르네상스 조각가들은 잃어버린 부분을 더하여 작품들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로댕은 ‘논 피니토’(non finito: 미완성)라는 일종의 낭만주의적 효과를 위해 토르소를 사용했다. 한편 마욜은 고도로 농축된 조각적 형태로서 토르소를 제작 대상으로 선택했다. 토르소는 인체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형태로 간주되어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다음백과]
▼네로 황제의 욕조
자주색 대리석으로 만든 직경 5m의 네로 황제 욕조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아래 바닥은 로마시대 목욕탕 유적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그리스 십자가의 방에 있는 전쟁의 여신 ‘아테네’와 ‘이지스’가 그려진 원형 모자이크
▲다산을 상징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14개의 유방을 가지고 있으며, 대지를 주관하는 모신으로 동식물의 다산과 번성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왔습니 다.
▼카이사르 살인(Murder of Cesa er) 아라찌(tapistry) 회랑
▲1549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신화의 내용이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만든 작품입니다. 테피스트리를 자세히 보면 아래부 분에 넘어져 있는 사람이 보이는 데, 그 사람이 바로 카이사르(Gaiu s Julius Caesar)입니다.
아라찌(tapistry)회랑은 아름다운 테피스트 리(tapistry)가 전시되어 있는 통 로입니다. 아라찌(Arazzi)는 이탈리아 말로 테피스트리를 말하며, 이 곳의 테피스트리들은 라파엘로 (Raphaelo) 제자들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브뤼셀에서 직조한 플랑드로 테피 스트리(Flemish Tapestries)들로서 1531년 시스티나 예배당 (Capell a Sistina)에 처음 전시되었으나 요즘에는 이 곳 아라찌 회랑에 자 리하고 있다고합니다.
▼지도 회랑 (Galleria delle Carte Geograf iche)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타일화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원 본은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있고 이건 레플리카이지만 타일로 만든 거대 모자이크화입니다.
♣성 베드로 광장
(Piazza San Pietro)
베드로 성당 앞의 웅장한 광장, 산피에트로광장
바티칸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의 하나는 성 베드로 성당 앞의 광장이다. 이 광장은 알렉산드로 7세 재위 시(1665~1667)에 베르니니가 1667년까지 12년의 공사 기간 동안 완성한 것이다. 이 광장은 우선 완만하게 경사가 지도록 했는데 그 이유는 성당 앞에서 거행되는 여러 종교 의식을 잘 보이게 함과 미켈란젤로의 돔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전체적으로 팔을 벌려 모든 신도를 감싸 안는 모양을 지니고 있다.
가장 넓은 곳의 크기는 240×340m이고 양 좌우에 15m 높이의 기둥이 총 284개가 들어서 있다. 그 위에는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만든 높이 3.2m 크기의 성인상이 140개가 있다. 또한 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 네로 전차 경기장에 있던 것으로 1585년에 도메니코 폰타나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오벨리스크는 전형적인 해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직도 광장 바닥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 분수가 두 개 있는데 광장 입구에서 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분수는 마데르노에 의해 1613년에 제작되었고 왼쪽의 분수는 베르니니에 의해 1675년에 제작되었다. 이 광장을 만든 베르니니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모형을 가져왔다.
바티칸 대성당에서 천사의 성으로 바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1950년에 만들어졌다. 바로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이다. 그리고 광장을 돔에서 바라보면 광장 바닥에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줄이 나 있는데 이유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계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매우 치밀하게 만들었다.[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