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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태국(06)방콕,방콕왕궁(2023.8.1)

여행복사꽃 2023. 10. 21. 16:19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보였는데, 여기가 방콕 왕궁이라고!!!

방콕왕궁은 짜끄리 마하 쁘라쌋(Chakri Maha Prasat) 왕궁에서 가장 웅장한 유럽풍의 건물로, 라마 5세가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와 짓기 시작해 1882년 완공하였다. 라마 5세부터 라마 6세까지 외빈을 위한 연회 장소로 쓰였다.[인조이방콕]

기대하지도 않았던 왕궁 근위병 교대식도 보고!!!!

방콕왕궁은 왓 프라깨우를 보고 남서쪽 통로로 나오면 보인다. 프라 마하 몬티안(Phra Maha Montien)을 거쳐 나오면 중앙에 보이는 웅장한 유럽풍 건물이 짜끄리 마하 쁘라삿(Chahakri Maha Prasat)이다. 그 옆으로 두씻 마하 쁘라삿(Dusit Maha Prasat), 왓 프라깨우 박물관(Wat Phra Kaew Museum)이 있다. 라마 1세가 랏따나꼬신으로 수도를 옮긴 이래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왕실이나 국가 행사 때만 이용된다. 왕궁 건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대신 왕실 근위병과 사진을 찍어 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인조이방콕]

방콕 왕궁(태국어: พระบรมมหาราชวัง, Grand Palace)은 태국 방콕에 있는 복합 건축물이다. 정식 명칭은 “프라 보롬 마하 랏차 왕” (พระบรมมหาราชวัง)이다. 이 건축물은 18세기 이후부터 국왕이 머물렀던 공식 관저이다. 건축은 1782년 라마 1세 때 수도를 톤부리에서 방콕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여러 번의 증축 공사를 통해 계속 황궁이 확장되었다. 그러나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은 이곳에 머물지 않고, 치뜨랄다 궁에 거주했다. 태국인들의 심장부와도 같은 이곳은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정취가 있다. 높이 솟은 궁전과 누각, 사원들은 모두 금박 잎새, 자기, 유리로 찬란하게 장식되어 눈이 부시다.[위키백과]

기둥은 유럽식 건물인데 지붕은 태국식!!!

방콕왕궁 궁전은 차오프라야 강의 동쪽 강뚝에 있으며 길이만 1,900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체 면적은 218,400 m2이다. 벽에서 나가면 강뚝을 따라 운하도 설치되어 있으며 왕궁의 방어를 위한 것이다. 때문에 궁전이 하나의 섬처럼 되어 있으며 이를 태국에서는 랏따나꼬신(Rattana Kosin)이라고 통칭한다.[위키백과]

방콕왕궁 역사
1782년 톤부리 왕조의 최초이자, 최후의 왕인 딱신 대왕을 숙청한 후 차끄리 왕조를 연 붓다 요드파 출라로께 왕(라마 1세)이 시암의 수도를 방콕의 서쪽에 있는 톤부리에서 차오프라야 강 동쪽의 방콕으로 천도하기로 결심하고 거주지와 집무실로 사용할 권위있는 새로운 왕궁을 짓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선택된 지역은 중국인 상인들이 점유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현재의 야오와랏 지역으로 옮겨줄 것을 탄원했다.

1782년 5월 6일 황금 탑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 왕궁은 여러 갱의 목조 건물과 사면을 에워 싼 길이 1,900m의 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둘러 싼 지역은 218,400km2의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곧 왕은 《에메랄드 부처 사원》을 만들라고 명령하고, 왕과 왕실의 왕사로 사용했다. 1785년 왕궁이 완공되자, 왕은 대관식을 하기로 결정한다.[위키백과]

왕궁은 총면적 218,000 평방미터, 사각의 울타리 둘레가 1,900미터 에 달하여 장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방콕이 수도가 된 해 인 1782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왕족의 주거를 위한 궁전, 왕과 대신들의 업무 집행을 위한 건물, 왕실 전용 에메랄드 사원, 옥좌가 안치된 여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짜오프라야 강 서쪽 새벽 사원에 인접한 곳에 위치한 톤부리 왕조가 끊어지게 되자 짝끄리 왕조를 세운 라마 1세는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의 확립과 아유타야 시대의 영광과 번영을 재건하고자 강 건너 현 위치로 천도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천도를 결심하자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이 곳에 왕궁을 건설하도록 하였으며, 1782년 왕궁 일부가 준공되자마자 바로 이곳에서 라마 1세의 성대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왕족의 거주를 위한 궁전과 업무 수행에 필요한 건물을 가장 먼저 건축하였는데, 그 중 제일 먼저 준공된 두건물은 왕조가 안치되어 있는 "두씻 마하 쁘라쌋"과 "프라 마하 몬티언'이다.[왕궁 안내문]

프라 티낭 차크리 마하 프라삿 앞의 프라 티낭 Aphorn Phimok Prasat 파빌리온
두싯 마하 프라삿

▲두짓 마하 프라삿 궁전 (대궁전)

라타나코신 시대 초기 두짓 마하 프라삿 궁전은 국가 행사가 거행되고 왕족의 의식이 행해진 연회장이었습니다. 궁전은 기원후 1806년 라마왕 1세(King Rama I)에 건설되었습니다. 구조는 높고 커다란 천장이 덮고 있는 십자가 구조입니다. 초기에 궁전은 아유타야의 수리얏 아마린 궁전(Suriyat Amarin Palace)처럼 규모가 컸습니다. 대궁전의 두짓 마하 프라삿 궁전은 남아있는 전통 태국 궁전의 예입니다. 라마 3세 왕의 통치 기간에 재건하였는데 안타깝게도 1세 왕이 최초로 만들었던 초기 기술의 흔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앙보란 고대 도시의 대궁전은 오늘날 존재하는 동일한 궁전을 본떠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꼼꼼한 조사와 예전 사진 및 현대 문서를 연구하여 무앙보란 고대 도시는 궁전의 예전 모습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앙보란의 두짓 마하 프라삿 궁전은 구조적 형태로서 현대적인 모습의 홀에서 대단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받침대 없이 서 있는 기둥은 라마 6세 왕 통치기간에 원래 궁전에서 제거되었지만, 왕좌의 방 중간에 재건되었습니다. 열주는 건물의 높고 큰 천장을 받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기둥의 색감과 디자인은 방콕의 왓 프라 체툽온 위몬망카라람(혹은 왓 포 Wat Pho, Wat Phra Chetuphon Wimonmangkararam)의 기대있는 부처상의 받침대에서 본떴습니다. 천장의 양식과 장식은 개인 소장품의 나무 조각의 디자인에서 가져왔습니다. 정교하게 장식된 현관의 정면은 고대 태국 '프라삿(Prasat)' 건물의 옛 사진과 일치합니다.
창 사이의 금빛 옻칠 작업은 방콕 톤부리(Thon Buri, Bangkok)의 왕 낭 농(Wat Nang Nong)에 있는 그림에서 양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림은 라마 5세 왕이 기록한 국가 행사의 연간 성공을 나타냅니다. 더욱 정확하게 벽화는 정부, 종교, 군대 및 외교적 성질의 띄는 행사와 태국 정통 방식의 삶을 모사합니다. 무앙보란은 라마 3세 왕부터 꾸준히 전해져온 전통적인 태국 벽화에 사용된 기술과 스타일의 부활을 촉진하기 위해 이 템파 벽화를 제작했습니다.[구글검색]

방콕 실라빠껀 대학교

실라빠껀 대학교(예술 대학교) 또는 신빠껀 대학교는 태국의 대학으로, 태국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 대학은 1943년 이탈리아계 태국인 예술 교수 신라빠 피라시(이탈리아명은 코라도 페로치, Corrado Feroci)에 의해 방콕에 세워졌다. 이 대학은 예술 및 고고학 분야에서 태국 내의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종합대학으로 이 외에도 많은 학부가 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