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라 뚜르 에뻴, la Tour Eiffel)
에펠탑(프랑스어: Tour Eiffel, [tuʁ ɛfɛl], 영어: Eiffel Tower)은 프랑스 파리의 상징적 건축물로, 1889년에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 만국 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박람회를 상징할만한 기념물로 에펠 탑을 건축하였다. 박람회가 열린 마르스 광장에 출입 관문에 위치해있다. 프랑스의 대표 건축물인 이 탑은 격자 구조로 이루어져 파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이 탑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프랑스 공학자 귀스타브 에펠의 작품으로 이를 디자인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위키백과]
에펠탑 구조적 특징
건설 당시 노출격자형 철구조물을 세우려는 에펠의 구상은 경이와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미학적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반대를 받았으나 마침내 미학적 가치를 입증했다. 풍력 등의 하중을 받는 금속 아치와 금속 트러스의 성질에 관한 앞선 지식을 활용해 건설된 이 구조물은 토목공학과 건축설계 분야의 일대 혁명을 예고하였다.
324m 높이, 1만 8,038 개의 철골, 250만 개의 리벳으로 만들어졌으며, 4개의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는 탑의 기단은 공학적인 배려와 함께 에펠의 예술감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곡선을 따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했다. 미국의 오티스엘리베이터회사에서 설계한 유리 승강기는 이 건축물의 주요특색으로, 에펠 탑을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로 부각시켰다.
1,665개의 계단을 오르면 2층으로 된 전망대에 도착하며, 전망대에서는 인근에 있는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 샤이요 궁(Palais de Chaillot), 인류학 박물관을 비롯해 몽마르트의 사크레 꾀르(Sacré-Cœur) 대성당,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까지 한 눈에 보인다. 에펠 탑은 철골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7년 마다 도색작업을 하고 있다.
평가
에펠 탑은 건축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다. 당시 파리 시내 건축물들이 중후한 석조건축으로 되어 있었던데 반해 골조만으로 이루어진 에펠 탑이 이질적인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예술가를 비롯한 미학적인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에펠 탑이 보이지 않도록 집의 창문을 반대 쪽으로 내었고, 점심은 에펠 탑 안의 식당에서 먹었는데, 파리에서 에펠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후 철과 콘크리트, 유리를 활용한 근대적 건축물의 흐름을 선도적으로 예측한 사례로 인정받으면서 파리의 명물로 떠올랐다. 에펠 탑의 철골 노출 구조는 이후 건설된 철도역사, 교량 등의 구조물에 큰 영향을 끼쳤다.[다음백과]
샹 드 마르스 광장(에펠탑 잔디밭) 사관학교의 연병장
‘샹 Champ’은 불어로 들판이란 뜻이고, ‘마르스 Mars’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을 뜻한다. 즉, ‘전쟁 신의 들판’이란 뜻의 샹 드 마르스!!! 파리 7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7구 주민들의 조깅 및 산책 장소이다. 그리고 구슬 치기 ‘빼땅크‘ 장소 및 휴식처일 뿐 아니라 ‘에펠탑‘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의 쉼터로 자리잡고 있다. 잔디밭에 누워서 올려다보는 ‘에펠탑‘의 모습은 절경!!!
1751년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흐’ 부인의 건의에 의하여, 프랑스 군대의 장교를 육성하는 ‘사관 학교 Ecole militaire’를 설립하였다. 1752년부터 건축가 ‘가브리엘 Gabriel’의 주도하에 18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 완공되어 1760년부터 군사학교로 이용되었다. 군사학교에서 사용할 연병장이 필요하자 1765-1767년 사이에, 이 곳의 야채 밭을 재정비하여 군사 훈련장으로 만들고, 5개의 육중한 철교로 연결된 울타리로 둘러싸인 연병장으로 이용된다. 1780년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출입이 허용하였으며, 1783년에는 물리학자 ‘샤흘르 Charles’가 파리 시민들 앞에서 뜨거운 공기 대신에 수소를 넣은 기구 실험을 하였다고 한다.
대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면서 이곳은 혁명과 시민 정신의 장소로 불리며 대중 집회의 장소로 이용된다. 1790년 7월 14일에는 바스티유 감옥 함락 1주년 기념식이 ‘딸레랑 Talleyrand’ 주교의 집전으로 300 명의 신부들과 미사를 올렸다. ‘라파이예트 Lafayette’ 장군의 주도하에 거행되면서 30 만 여명의 참가 시민에 의한, 국가와 입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선서식이 있었으며 흥분한 시민들도 선서를 하고, ‘루이 16세’도 바로 이곳에서 선서를 강제로 하였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의 황제 대관식 다음날인 1804년 12월 3일 이곳에서 자신의 친위대에게 황제의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과 독수리를 수여한 곳이다.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에 의하여 그려진 작품이, ‘베르사유 궁전‘의 나폴레옹 방에서, ‘황제 대관식 그림‘의 맞은 편에 걸려 있으니 인증 샷 강추!!!! ‘나폴레옹 3세’ 시절인 1848-1855년 사이에는 이곳에서 경마가 정기적으로 열렸었지만, ‘불로뉴 숲‘에 새로운 ‘롱샹 Longchamp’ 경마장을 건설하여 이사하고, 다시금 사관학교의 연병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860년 샹 드 마르스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깊은 ‘해자’를 메우고, 육중한 철교와 울타리를 철거하고, 1867, 1878, 1889, 1900, 1937년에는 만국박람회장으로 이용하는데,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는 1889년 샹 드 마르스 광장을 파리 시에 양도하고, 군대는 ‘이시 레 물리노 Issy-les-Moulineaux’로 이전한다. 1908년부터 건축가인 ‘쟝 까미 포흐미제 Jean-Camelle Formige’에 의하여 연병장은 잔디밭으로 변하고, 주위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선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구글검색]
트로카데로 광장 Place du Trocadéro
샤요궁(Palais de Chaillot) 북서쪽에 있는 반원형의 광장으로 정확한 이름은 '트로카데로 11월 11일 광장'이다. 1815년 신성동맹이 체결된 이후 프랑스는 1823년 에스파냐에 절대왕정을 확립하기 위하여 안달루시아 지방 카디스(Cádiz)에 있는 트로카데로요새를 점령하였다. 1827년 이 승리를 기리기 위하여 점령 상황을 재현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당시 이 광장이 있는 샤요 언덕을 트로카데로요새로 꾸민 뒤로 광장에 트로카데로란 이름이 붙여졌다. 또 제1차세계대전 종전기념일인 11월 11일에는 이곳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광장은 이후 여러 차례 모습이 바뀌다가 1878년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샤요궁을 건립한 뒤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광장 중앙에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총사령관이던 포슈(Ferdinand Foch, 1851~1929)의 기마상이 있다.[네아버지식백과]
파리의 센( Seine)강변
Paris, Banks of the Seine
일드프랑스(Ile de France)지방 센(Seine) 강 중하류에 위치한 파리(Paris)는 프랑스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다. 센 강변에는 아름답게 보존되어온 역사적 건축물들과 개축되거나 현대에 들어 새롭게 건축된 독창적인 건물들이 많다. 센 강변은 1991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되었다.
파리의 센 강은 퐁 네프(Pont Neuf), 퐁 디에나(Pont d’Iena), 퐁 데 쟁발리드(Pont des Invalides), 퐁 마리(Pont Marie), 퐁 쉴리(Pont de Sully), 파세렐르 솔페리노(Passerelle Solferino)를 비롯한 30여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 1600년경 지어진 퐁 네프는 개통된 지 400년이 지난 다리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퐁 디에나는 나폴레옹(Napoleon Ⅰ, 1769~1821)이 예나전투(Battle of Jena)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10년경 지은 다리이다. 나폴레옹 3세에 의해 19세기 중반에 개통된 파세렐르 솔페리노는 해체되었다가 20세기에 다시 지어진 인도교(人道橋)이다.
이 다리들을 사이에 두고 센 강의 좌우에는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 대성당은 12세기 중반에 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프랑스의 모(母)성당이자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천국의 문’이란 명칭을 얻은 생트샤펠(Sainte-Chapelle) 성당은 13세기 중반에 건축된 것으로 장미창과 목재 사도상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중세시대의 많은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한편 수많은 예술 작품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루브르(Louvre) 미술관과 오르세(Orsay) 미술관,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320m 높이의 거대한철제탑이자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Eiffel Tower)도 센 강변을 따라 위치해 있다.
센 강변은 과거부터 내려온 건축물의 보존과 오스만(Georges-Eugene Haussmann, 1809~1891, 1853~1870 파리지사로 근무)과 같은 도시 행정가를 통한 도시 구조 확장을 통해 발전해 왔고, 오늘날에도 아크 드 라 데팡스(Arc de la Defense)나 루브르 미술관의 유리 피라미드 같은 새로운 건축물들로 센 강변은 수정·확장되고 있다.[네이버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