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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8)노트르담 대성당(2018.8.15)

여행복사꽃 2023. 2. 11. 01:15

♣노트르담 사원,숙박 PREMIERE CLASSE ROISSY CDG PARIS NORD (프리미어 클라세 루아시) (영국)

노트르담 대성당
Notre-Dame de Paris

노트르담대성당은 프랑스 파리 시테 섬에 있는 대성당이다. 1163년 건축을 시작한 후 성가대석과 네이브는 1240년 완공되었고 100여 년에 걸쳐 포치, 예배당 등이 건축되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으며,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으로도 유명했다. 길이 130m, 폭 48m, 천장 높이 35m, 탑 높이 69m의 대건축물로 4각형 쌍탑과 쌍탑의 선을 따라 정면을 3부분으로 나눈 버팀벽의 수직선과, '그랜드 갤러리'의 수평선이 '장미창‘을 중심으로 비할 데 없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19년 4월 15일 발생한 대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붕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다음백과]

노트르담대성당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서깊은 대성당이다. 그 규모와 오랜 역사로 유명하며, 고고학과 건축학적 관심의 대상이다. 파리 센 강에 떠 있는 시테 섬에 있다. '노트르담(Notre Dame)은 프랑스어로 '우리들의 부인'라는 말인데,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 건물이며, 파리대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된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
파리 주교 모리스 드 쉴리가 이전에 있던 2개의 바실리카식 교회당을 합쳐 하나의 큰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웠고,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머릿돌을 놓고 1189년 대제단이 봉헌되었다. 서쪽 앞면의 성가대석과 네이브(身廊, 성당에서 중앙 회랑에 해당하는 중심부의 가장 넓은 공간)는 1240년 완공되었고 그뒤 100여 년에 걸쳐 포치(porch), 예배당, 그밖의 여러 장식물들을 지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수세기를 지나면서 흠집이 생기고 약해졌으며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크게 파손되어, 19세기에 서쪽 정면 '그랜드 갤러리'의 28개 조상과 3개 출입문 측벽에 서 있는 조상 등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트랜셉트(翼廊, 십자형 성당 건물의 팔에 해당되는 부분)와 네이브 사이에 높이 솟은 첨탑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특징
전체 길이 130m, 폭 48m, 천장 높이 35m, 탑 높이 69m의 대건축물로 탑 위에 뾰족탑을 덧붙이기로 되어 있었으나 아직 그대로이다. 4각형 쌍탑과 쌍탑의 선을 따라 정면을 3부분으로 나눈 버팀벽의 수직선과, '그랜드 갤러리'의 수평선이 '장미창'을 중심으로 비할 데 없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면에 3개 입구와 그 입구의 이름과 관련지어 만든 조각, 그 위에 유대 왕과 관련있는 조각이 들어서 있는 갤러리, 직경 10m에 가까운 장미창, 그 위에 긴 열주, 좌우의 탑 등 양식은 고딕 건축의 전형으로 성당 건축의 규준이 되었다.

내부는 아일(側廊, 성당에서 네이브와 평행을 이루며 아케이드나 기둥으로 구분되는 좁고 긴 공간)이 2층으로 되어 있고 네이브는 거대한 원주가 끝에서 3개의 기둥으로 나뉘면서 천장으로 뻗어 있어 전체적으로 밝고 높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엄한 종교적 공간을 연출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북쪽 정면의 장미창을 제외하고는 후세의 작품이다.

주요 문화재
성당 건물 자체가 85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성당에서 보유하거나 건물 자체에 부착된 문화재도 많다. 오른쪽 출입구의 〈성모자(聖母子)〉(1165~70경), 왼쪽 출입구의 〈성모대관(聖母戴冠)〉(1210~20경), 중앙 출입구의 〈최후의 심판〉(1220~30경), 북쪽의 〈붉은 입구〉, 내진 주위를 장식한 진한 색깔의 〈그리스도전(傳)〉(14세기)이 유명하다.

역사적 의의
이 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 8. 26)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꼽추〉의 무대이기도 했다. 199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하루 평균 3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파리의 관광 명소였다.

화재 피해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50분 경 성당 보수를 위해 설치했던 공사시설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1시간 만에 지붕과 첨탑이 붕괴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화재는 첨탑에서 발생했으며, 대부분 목재로 되어 있는 내부 장식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크게 번졌다. 7시 50분쯤 대성당의 첨탑 끝부분이 불 속으로 넘어졌고, 이어 8시 7분쯤 첨탑과 지붕이 붕괴되었다. 화재는 6시간에 걸쳐 지속되었으며, 석조로 된 골조를 제외한 목재로 구성되었던 부분들은 거의 폐허로 변했다.[다음백과]

▲쌍둥이 탑

성당 전면부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탑 한 쌍이다. 1200년대 공사를 시작해 북쪽 탑은 1940년, 남쪽 탑은 1250년 완공됐다. 두 탑의 높이는 68m에 달하며 계단 387개를 올라가면 파리 전경을 볼 수 있다. 쌍탑 사이에는 세 개의 문이 서 있는데, 왼쪽에는 1220년 지어진 성모 마리아의 문, 중앙에는 1230년 완공된 최후의 심판문, 오른쪽에는 1200년경 지어진 성녀 안나의 문이 위치한다. 이 세 개의 문 위에는 28개의 유다 왕을 상징하는 조각상 28개가 늘어서 있다.[네이버지식백과]

▲최후의 심판 문

최후의 날에 심판하는 예수의 모습과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악마가 예수의 저울을 지옥 쪽으로 이끌고 있다.[다음백과]

▲노트르담 대성당 북쪽 장미의 창

성당 내부 서쪽, 남쪽, 북쪽에 각각 위치한 세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로 13세기 제작되어 가톨릭 미술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서쪽 장미창이 가장 작지만 1225년에 제일 먼저 만들어졌고, 남쪽과 북쪽 장미창은 지름이 13m에 달한다. 남쪽 장미창은 이전에 화재로 파손됐으나 이후 복원되었다.[네이버지식백과]

▲신약 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노트르담 대 성당의 나무 프리즈


▼샤를마뉴(Charlemagne/Charles the Great, 742-814)동상

▲샤를마뉴 대제 Charlemagne
서유럽의 기반을 닦다.

카롤링거 왕조의 왕. 프랑크 왕국의 두 번째 왕으로 로마 제국 이후 분열되어 있던 서유럽 지역 대부분을 통일하고 유럽의 기틀을 잡았다. 롬바르드 왕국, 사라센과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끝낸 후 유럽 동쪽에 사는 민족 중 특히 작센족을 굴복시켜 가톨릭으로 개종시킨 후 자신의 영토로 이주시켜 훗날 오토 왕조가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다음백과]


▼뽕 드라흑슈베쉐 다리 Pont de l'Archevêché

▲Pont de l'Archevêché는 노트르담 남동쪽의 대성당과 센 강 사이에 위치한 대주교 관구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구글검색]

대주교단의 다리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대성당(사진 포인트)


프티 퐁 ( 작은 다리 )

Petit Pont (Little Bridge)

▲프티 퐁 ( 작은 다리 )은 1853년에 지어진 파리 의 센 강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 이지만 고대 부터 구조물이 이 지점에서 강을 건넜습니다 . [1] 현재의 다리는 quai de Montebello 와 quai Saint-Michel 사이의 5구와 함께 4구와 Île de la Cité를 연결하는 단일 석조 아치입니다 . [2] 쁘띠 퐁(Petit Pont)은 갈로로만 시대 에 처음 시작된 이래로 최소 13번 파괴된 것으로 유명합니다.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위키백과]



▼유다의 왕들
(The Kings of Judah)

▲유다 왕국(יְהוּדָה, 아카드어: 𒅀𒌑𒁕𒀀𒀀, 아람어: 𐤁‬𐤉‬𐤕‬𐤃𐤅‬𐤃)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931년 무렵에 분열되어 12개 지파 가운데 2개의 지파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지지로 세워진 왕국으로, 이스라엘 왕국의 창건 왕조인 다윗 왕조가 군림하였다. 북이스라엘 왕국과 대조하여 남유다 왕국으로 부르기도 한다.[위키백과]


▼숙박 PREMIERE CLASSE ROISSY CDG PARIS NORD (프리미어 클라세 루아시)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