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중국(11)요녕성,단둥,압록강철교(조중우의교)단둥 고려반점(평양고려식당,공연 및 식사)(2018.8.10)
압록강철교(中朝友谊桥)


1. 개요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를 잇는 다리로,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의 일부이자 경의선 신의주역과 중국 측의 단둥역을 연결하는 철도가 같이 지나간다. 압록강을 경계로 두 국가간 국경이 갈린다.
흔히 '압록강철교'라 많이 알려져있지만 북한측 정식명칭은 '조중친선다리' 또는 '조중우의교'라 부르고 중국측 정식명칭은 '중조우의교'라 불린다. 한국 언론에서는 북한측 정식 명칭인 조중우의교를 많이 인용하는 편이다.
구조는 꽤 특이한데, 한쪽에는 철도가 있고 한쪽에는 1차로로 되어 있는 도로가 있다.
북한 쪽으로 넘어와서 신의주에서부터 1번 국도가 시작되며, 철도도 마찬가지로, 북한 쪽으로 넘어오면 신의주역에서 경의선이 시작되어 서울역에서 경부선과 직결된다.[나무위키]


2. 역사
압록강철교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일본이 한반도에 경의선을 개통한 이후 중국으로 진출하려고 안둥(현 단둥)과 봉천(현 선양)을 잇는 안봉철도(安奉线)를 건설하여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를 잇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의해 1911년 10월에 단선 철교로 개통었으며, 이때 개통한 압록강철교(現: 압록강단교)는 지금의 철교보다 하류 방면으로 60 m 아래에 위치하고, 큰 배가 지나갈 수 있게 회선교로 건설되었다. 길이는 944.2 m이고 교각은 총 12개였다. 다리를 돌릴 수 있는 회선교 장치는 4번째 교각에 있었다.
그러다 수요가 늘면서 단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37년 4월 새로운 철교를 착공, 1943년 5월에 개통했다. 새로 건설된 압록강철교는 선로가 두 가닥 부설된 복선 철교로, 구 단선철교에 있었던 회선교는 없었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참전하자 미군은 중공의 지원을 줄이고자 폭격기를 동원, 압록강철교를 폭파했다. 이때 나란히 있던 두 철교가 모두 끊어졌다. 그러나 1.4 후퇴 이후 전선이 다시 38선 이남으로 밀려나자 미군은 이 철교를 더 이상 신경쓸 수 없었고, 결국 중공군은 1943년 개통한 복선철교를 수리해 물자를 계속 수송했으나 단선철교는 부서진 그대로 놔두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복구한 철교는 선로 한 가닥을 걷어내 도로로 바꾼 형태가 되었다. 부서진 단선철교는 중국 측 4개 교각만 그대로 남고, 나머지는 상판이 없어지고 교각만 남았는데, 중국은 자국 측 철교를 그대로 보전해 관광지로 만들었다.[나무위키]


3. 특징
압록강철교는 북한의 생명길이나 다름없다. 이곳은 오로지 단둥 통상구(丹东口岸)를 거쳐서만 오갈 수 있는데, 주로 북한에 들어가는 차량에는 북한에 들어갈 생필품들이 주로 많이 실려있기 때문이고, 오히려 북한에서 나오는 차량이 텅텅 빈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이는 차량도 대부분 북한 차량이다.
단둥 통상구의 보안이 매우 세다. 최근 들어 마약 유통을 막기 위해 인민경찰이나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인원도 늘리고 보안도 대폭 강화, 마약탐지견까지 들여와서 삼엄한 경비를 유지 중이다. 참고로 중국은 아편전쟁으로 멸국 직전까지 치달은 경험이 있어 마약을 소지하기만 해도 사형에 처할 정도로 강하게 단속하지만, 북한의 경우 고난의 행군 이후 메스암페타민(소위 뽕)이 횡행해 사회 문제가 될 정도이고, 따라서 이들과의 교역이 늘수록 마약도 유입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중국 측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옆에 부서져 있는 교량은 처음 건설된 압록강철교로 일제강점기 당시 쓰이던 것이다. 지금 쓰는 교량은 1943년에 개통한 것이다. 이 철교는 중국에서 관광지로 조성해 놓았기 때문에 둘러볼 수 있다. 끊어진 중간 부분까지만 공개되어 있고, 다리를 돌리던 회선교 장치도 볼 수 있다.
이 철교를 대체할 목적으로 남쪽에 "신압록강대교"를 건설했다. 사장교로 건설된 외관이 멋진 교량이다. 완공은 2014년 10월에 되었지만 북한 쪽이 도로 연결을 하지 않아 개통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만약 신 압록강대교가 개통된다면 압록강철교는 예전처럼 복선철교가 될 예정이다. 아마 통일이 되거나 해서 신의주시가 우리나라 행정구역이 되면 이 다리 관련된 이야기가 더 나올수도 있겠다.[나무위키]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 중국어 정체자: 中朝友誼橋, 간체자: 中朝友谊桥, 병음: Zhōng Cháo Yǒuyíqiáo)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신의주시와 중화인민공화국 단둥(단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압록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차량과 보행자도 통행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구 명칭인 압록강철교(鴨綠江鐵橋)로도 불린다.[위키백과]


1911년에 압록강 재래교(現압록강단교)의 단둥 방향 4번째 경간에 대형선박 통과를 위한 회전식 개폐 장치가 갖추어진 단선 철교로 개통되었고, 1943년 압록강 상류 쪽에 복선 철교가 개통되었다. 재래교는 1950년 한국 전쟁 때 파괴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복선 철교는 1990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 간의 합의로 압록강 철교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개명하였다. 재래교는 압록강 단교(중국어 정체자: 鴨綠江斷橋, 간체자: 鸭绿江断桥, 병음: Yālù jiāng duànqiáo)로 불리며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은 자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전망할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위키백과]












左: 압록강 단교
右: 압록강 철교


압록강 단교(鴨綠江斷橋, 중국어 정체자: 鴨綠江斷橋, 간체자: 鸭绿江断桥), 구 압록강 철교(鴨綠江鐵橋)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 압록강 국경에 일본 제국이 건설한 철교로,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의 폭격으로 단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09년 일본 제국이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으로 연결되는 압록강 철교를 착공하였다. 철교는 1911년 준공되어 한반도에서 중국의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 노선이 연결되었다. 압록강 철교는 트러스교로서, 다리 중앙부는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선개교였으나, 1934년 3월에 가동을 중단하였다.
한국 전쟁 중 1950년 11월 8일 유엔군의 폭격으로 교량의 중앙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까지가 파괴되어 단교가 되었으나, 현재까지 역사적 유산으로서 연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다리의 바로 상류에 1943년 완공된 압록강의 두번째 다리가 현재는 조중우의교(압록강철교)라고 명명되어 이용되고 있다.[위키백과]


압록강 철교
鴨綠江鐵橋


압록강철교(鴨綠江鐵橋,조중우의교)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중국의 단둥을 연결하는 개폐식철교로 총연장 944m이며, 압록강 하구에서 상류로 45㎞ 지점에 위치한다. 일본은 대륙진출을 위하여 한국과 만주를 잇는 철도교량을 도문·상삼봉·훈융·만포·수풍·신의주 등 6개 지역에 가설할 계획이었으나 압록강철교만이 경의선에 연결되어 건설되었다.
당시에는 압록강 상류 수백㎞를 배나 뗏목을 이용해 왕래했으나 여름철 홍수기와 겨울철 결빙기에는 수운을 이용할 수 없었고, 수풍댐이 완성된 이후로는 수운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철도감부에서는 1904년 2월 안둥현 하류 약 1㎞ 지점에 철교 가설계획을 세웠다. 가교점 부근은 조수간만의 차가 평균 4m 정도이고, 유속은 홍수시 일반하천과 같이 빠르며, 하상도 일정하지 않았다.
교량건설공사는 1909년 8월 착공해 1911년 10월말 준공되기까지 2년 2개월이 소요되었으나 결빙과 강우 기간을 제외하면 실제 작업기간은 1년 4개월에 불과했다. 교량은 중앙을 철도노선으로 이용하고, 그 양측에 각각 2.6m의 보도를 설치했다. 형(桁)은 모두 궁상형강형을 사용했고, 교각은 12개로 되어 있다. 교각의 기초는 잠함공법으로 했다.
선박의 항해에 적합하도록 한국측에서 9번째 교각의 형을 개폐식으로 건설해 수동식(예비로 석유발동기를 갖추었음)으로 회전시켰으나 교량 보존상의 이유로 1934년 11월 회전을 폐지했다. 그후 열차 운전 횟수의 증가로 부분적으로 개축했으며, 1943년 5월 재래교에서 상류로 70m 지점에 총연장 943.3m의 복선형 신철교를 건설했다.
현재 신철교는 조중친선우의선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재래교는 6·25전쟁 당시 폭격된 채로 보존되어 있다.[다음백과]










단둥고려반점
(丹东高丽饭店, 평양고려식당)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마지막 날 조선족 가이드의 안내로 단둥에 있는 평양고려식당을 찾았다. 우리 여행 당시에는 남북한 관계가 좋은 시기라서 아무 생각없이 공연도 보고 식사도 했다. 식당건물주는 중국인이며 북한에서 파견된 지배인과 여성 봉사원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우리가 북한식당을 찾은 이유는 평소 말로만 듣던 북한 식당이 궁금하기도 했고, 이번 기회에 정통(?)북한 음식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며 북한 무용수들의 공연을 보았는데 사진 촬영금지는 물론이고, 여러가지 주의사항이 많아서 조심스러웠다. 관람 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용수들이 웃고 있는 모습과 동작이 기계식처럼 보였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길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잘 봐 주었다. 음식은 대체로 깔끔하고 담백하였다. 여러음식 중에서 옥류관 냉면을 맛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