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프리카

아프리카(18)짐바브웨,빅토리아폭포(1)(2018.2.1)

여행복사꽃 2023. 4. 16. 10:00

♣ 호텔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 출발
-리빙스톤 [12:20] 리빙스톤 도착 후 국경을 통과하여 짐바브웨로 이동
♣ 짐바브웨 도착 후*짐바브웨편 빅토리아 폭포 도보관광


짐바브웨 입국심사

출처: 구글검색 사진캡쳐
출처: 구글검색 사진캡쳐
출처: 구글검색 사진캡쳐

짐바브웨 공화국(영어: Republic of Zimbabwe, /zɪmˈbɑːbweɪ, -wi/, 전 로디지아) 혹은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의 내륙국으로, 잠베지강과 림포포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보츠와나, 잠비아, 그리고 모잠비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짐바브웨의 수도이자 최대도시는 하라레이며, 두번째로 큰 도시는 불라와요이다. 짐바브웨에는 대략 1,4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영어, 쇼나어, 은데벨레어를 포함한 16개의 공용어가 쓰이고 있다.[위키백과]

짐바브웨의 어원

짐바브웨"라는 이름은 그레이트 짐바브웨 시대 당시 쓰였던 쇼나어 지명으로, 짐바브웨 남동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현재는 짐바브웨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를 일컬었던 것에서 기원한다. 많은 출처에 따르면 "짐바브웨"는 드짐바-드자-마브웨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쇼나어 중 카랑가 방언에서 "돌집들이 모여있는 곳" (드짐바는 "집"인 임바의 복수형; 마브웨는"돌"인 브웨의 복수형)으로 번역된다. 카랑가 방언을 사용하는 쇼나족은 아직도 그레이트 짐바브웨 지역에서 거주하는데, 이는 현재 짐바브웨의 마스빙고주 지역에 해당한다. 한편 고고학자 피터 가레이크는 "짐바브웨"는 드짐바-훼의 축약된 형태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쇼나어의 제즈루 방언으로 "공경받는 집들"을 의미하며, 보통 추장들의 집이나 무덤을 일컬었다고 전해진다.[위키백과]


빅토리아 폭포

Victoria Falls

잠비아,짐바브웨 국경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빅토리아 폭포

빅토리아 폭포(영어: Victoria Falls, 문화어: 빅토리어 폭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 잠베지강에 위치한 폭포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스코틀랜드인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것은 짐바브웨에서 사용 중인 이름이다. 더 오래된, 토착 이름인 모시오아투냐 폭포(Mosi-Oa-Tunya, 뜻: 천둥소리 내는 연기, 문화어: 모씨오아투냐 폭포)는 잠비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 중이다. 세계 유산 목록은 두 이름 다 인정한다.[위키백과]

빅토리아폭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폭포이다. 강이 최대 너비인 곳에서 강과 같은 너비로 펼쳐져 있으며,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최대 108m의 낙차를 이루며 떨어진다. 이 폭포를 처음 발견한 영국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 불렀다. 폭포의 동쪽 끝에는 이스턴 캐터랙트가 절벽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절벽은 서쪽에서 암체어라 불리는 저지대와 경계를 이룬다. 암체어에서 서쪽으로 레인보 폭포가 뻗어 있고, 그 옆에 호스슈 폭포가 있다. 호스슈 폭포를 지나 나마카브와 섬과 캐터랙트 섬 사이에 메인 폭포가 있다. 캐터랙트 섬 다음에는 데블스 캐터랙트라는 좁은 절벽이 있다.[다음백과]

빅토니아폭포에 가까워져도 강의 흐름이 빨라지지 않으나, 우렁찬 폭포소리와 물안개로 폭포에 다가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문에 칼롤로로지족(族)은 이 폭포를 '천둥치는 연기'라고 불렀다. 폭포 가장자리에서 45m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소리가 천둥소리같이 크게 들리며, 물보라 벽이 공중으로 305m 이상 튀어올라 65㎞ 떨어진 곳에서도 이 광경을 볼 수 있다. 매일 달이 뜰 때면 안개에 달무지개가 비치기도 한다.

폭포의 입구는 가장자리를 따라 자리잡고 있는 섬·저지대·갑 등에 의해 몇 부분으로 나뉜다. 폭포의 동쪽 끝에는 이스턴 캐터랙트(Eastern Cataract)가 절벽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은 썰물 때 대부분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절벽은 서쪽에서 암체어(Armchair)라고 불리는 저지대와 경계를 이루며 이 저지대가 건기에는 깊은 물웅덩이가 된다.

암체어에서 서쪽으로 레인보(Rainbow) 폭포가 뻗어 있고, 그 옆에는 또다른 절벽이 있어 호스슈(Horseshoe) 폭포를 이루고 있다. 호스슈 폭포를 지나 나마카브와(옛 이름은 리빙스턴) 섬이 있으며 나마카브와 섬과 캐터랙트(옛 이름은 보아루카) 섬 사이가 균열되어 형성된 메인(Main) 폭포가 있다. 캐터랙트(Cataract) 섬 다음에는 데블스 캐터랙트라는 좁은 절벽이 있는데, 건기가 한창일 때도 꽤 많은 물이 떨어진다.

빅토리아 폭포의 물은 넓은 웅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이 25~75m인 깊은 틈으로 모이는데, 이 틈은 폭포의 절벽과 같은 높이의 반대편 절벽으로 형성된 것이다. 폭포 반대편의 벼랑을 따라 레인 포리스트(Rain Forest)라는 나무가 우거진 지역이 나타나며 폭포에서 물이 튀어 1년 내내 푸른빛을 띤다. 이 폭포벽의 선반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폭포의 서쪽 끝에서 레인보 폭포 반대편, 좁은 협곡을 내려다보는 데인저 포인트(Danger Point)까지 뻗어 있다.[다음백과]


짐바브웨 국경검문소

출처: 구글검색 사진캡쳐
출처: 구글검색 사진캡쳐
출처: 구글검색 사진캡쳐
폭포입구 토속품 판매가게


데빌스 캐터랙트

Devils Cataract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쪽
Zimbabwe Side of Victoria Falls

폭포의 짐바브웨 쪽에 있는 악마의 폭포(Devils Cataract)은 60m 높이로 5개 폭포 중 가장 낮습니다. 폭포섬(Cataract Island)으로도 알려진 보아루카 섬(Boaruka Island)에 의해 폭포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Boaruka는 "물의 분할자"를 뜻하는 통가어입니다. 악마의 폭포(Devil's Cataract)는 이 폭포 시스템의 지질 구성에서 가장 약한 지점입니다. 여기서 잠베지는 단단한 현무암에 10미터 깊이의 흠집을 냈고 흠집이 침식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물이 폭포의 나머지 부분에서 멀리 흘러갈 것입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 다음 20,000년의 어느 시점이 될 수 있습니다 - 악마의 폭포(Devil's Cataract)는 더 부드러운 물질로 채워진 동서 관절 중 하나를 다시 잘라낼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일어날 수도 있고, 보아루카 섬(Boaruka Island)의 일부 또는 전부가 아래 협곡으로 무너지면 재앙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구글검색번역]

<아프리카를 횡단한 리빙스턴>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면화 공장에서 일하며 틈틈이 공부해야 했지요. 스물세 살 때 그는 크리스트교 전파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먼저 의사 자격증을 딴 뒤에 해외 선교사가 되었답니다.

아프리카를 탐험한 선교사
1841년, 리빙스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어요. 그는 사람이 많은 내륙에 가서 선교를 하려고 북쪽으로 1,00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 칼라하리 사막 근처로 갔지요. 그곳은 그 당시까지 어떤 백인도 가 보지 못한 지역이었어요. 그는 여행을 하며 무시무시한 더위에 시달렸고, 심지어 사자에게 팔을 물리기도 했다고 해요. 하지만 어떤 시련도 크리스트교를 널리 전하겠다는 그의 열망을 꺾지는 못했지요.

리빙스턴은 선교에 적당한 지역을 찾기 위해 1849년에 칼라하리 사막을 가로질렀어요. 이때 처음으로 응가미 호수를 발견했고, 2년 후에는 잠베지 강도 찾아냈지요.

그런데 잠베지 강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노예로 팔리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그는 노예 무역에 반대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대서양에서 아프리카 대륙 안쪽까지 이르는 길을 찾기로 했어요. 물자를 나르는 길이 편해지면 노예를 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프리카를 가로지른 최초의 유럽인
1853년에 리빙스턴은 잠베지 강 탐험에 나섰어요. 그 강이 대서양까지 흘러가면 노예 대신 배로 물자를 옮길 수 있었지요. 그런데 여행을 하다가 그는 엄청나게 큰 폭포를 발견했어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 같았지요. 그는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이 폭포를 빅토리아 폭포로 이름지었어요.

길을 떠난 지 3년 째에 리빙스턴은 마침내 모잠비크의 켈리마네에 도착했어요.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가로지른 거예요.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잠베지 강은 대서양이 아닌 인도양으로 흘렀지요.

그 뒤 리빙스턴은 다시 물길을 찾는 탐험에 나섰어요. 그러다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1864년에 영국으로 돌아갔지요. 그는 영국에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강연을 했어요. 아프리카 원주민이 겪는 어려움을 알리고 선교사로 나설 사람을 모으려고 한 거예요. 책도 몇 권 썼어요.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그의 책들은 큰 인기를 모았지요.

아프리카 대륙을 유럽에 알리다.
1866년, 리빙스턴은 영국 탐험대와 함께 나일 강의 근원을 찾는 탐험에 나섰어요. 그리고 이 탐험에서 므웨루 호수와 방궤울루 호수를 발견했답니다. 또 지금의 탄자니아에 있는 탕가니카 호수에서 흘러나가는 물줄기도 새로 찾았지요. 하지만 1871년에는 긴 탐험으로 병이 나서 우지지라는 마을에서 쉬어야 했어요.

그런데 이때 리빙스턴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 영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그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왔지요. 다행이 그들 중에 《뉴욕 헤럴드》 신문의 영국인 기자 스탠리가 그를 찾아냈어요.

리빙스턴은 스탠리가 가져온 약과 음식으로 기운을 차렸어요. 그러고 나서 스탠리와 함께 탕가니카 호수 북부를 탐험했지요. 스탠리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어요. 나일 강의 근원을 찾고 노예 무역을 없애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지요. 결국 스탠리는 그를 남겨두고 아프리카를 떠났어요.

리빙스턴은 스탠리와 헤어진 뒤 탐험을 계속했어요. 하지만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어요. 약과 음식 때문에 일시적으로 회복된 것처럼 보인 것일 뿐이었지요. 1873년 5월, 그는 현재 잠비아의 치탐보에서 숨을 거두었어요.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1년 후, 그의 마지막 탐험을 기록한 《중앙아프리카에서의 리빙스턴의 최후 일지》가 출간되었답니다.[네이버지식백과]

빅토리아 폭포는 남부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의 잠베지 강에 있는 폭포다. 일반적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과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라 불린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이 폭포를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토착민들은 훨씬 전부터 폭포의 존재를 알았다. 리빙스턴은 폭포 중앙에 있는 잠비아의 리빙스턴 섬에서 폭포를 기록했는데, 이 곳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폭포 중간의 땅이다. 여기서 폭포를 관찰한 리빙스턴은 당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 이름을 지었다. 영국인들이 식민지 시절에 지은 이름이라고 종종 이름을 바꾸자고 현지에서 반발도 일어나곤 한다.[3] 그렇지만 이 폭포를 보러올 때 기점이 되는 인근에서 가장 큰 잠비아의 도시 이름부터가 리빙스턴인 걸 생각하면 쉽지는 않을 듯. 원래 원주민들이 대대로 부르던 이름은 모시오아 툰야로,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는 뜻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어떻게 보면 어느 부분에서도 최고는 되지 못하는 애매한 폭포이기도 한데 앙헬 폭포처럼 가장 높은 폭포도 아니고[4] 이과수 폭포처럼 가장 넓은 폭포도 아니지만, 폭과 높이를 고려하면 매우 큰 폭포다. 폭x높이를 계산하면 가장 크다는 주장까지도 있지만, 곱해도 이구아수 폭포한테는 어차피 상대가 안된다. 연 평균 수량도 나이아가라 폭포한테 밀린다. 최고 수량의 역대기록만이 유일하게 1위. 사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폭포의 아름다움이니 수량의 순위가 크게 중요하진 않다. 적어도 세계 3대 폭포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규모라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나무위키]

빅토리아 폭포의 수원인 잠베지 강 중간 중간에는 나무가 자라는 섬들이 있는데, 폭포 근처에 가면 점점 더 많아진다. 이 폭포는 강물의 폭 전체가 한번에 쭉 떨어지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그 폭은 1,708m에 이른다. 빅토리아 폭포에는 산이라든가 계곡이라든가 하는 험준한 지형이 없이 사방 수백 km가 평지가 계속돼서, 물이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지형이다. 폭포 전경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강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기보다는, 깊숙히 파인 틈새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이렇게 물이 떨어지는 틈새의 깊이(높이?)는 최저 80m, 최고 108m이다.[나무위키]

악마의 수영장이라고 불리는 지점에서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웬 용자짓이냐 하겠지만, 실제로는 안전한 곳에서 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 속에 폭포 끝 쪽으로 바위 벽이 있어서 사람들이 더 이상 "흘러 내리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물이 살짝 넘치고 있는 풀장을 생각하면 되겠지요. 9월부터 12월까지는 물의 흐름이 과하지 않아서 폭포 끝 쪽으로 헤엄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인공적으로 건설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입니다. 잠비아 쪽의 리빙스턴 섬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데, 현지 가이드들은 한술 더 떠서 폭포 끝의 바위벽을 걸어다니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그야말로 진짜 용자짓을 해댑니다. 그래서 이 곳은 우천시 등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출입이 금지되며, 수위가 비교적 낮아지고 물의 흐름이 과하지 않은 9~10월 사이에만 개방된다고 합니다.[나무위키]

빅토리아 폭포 찾아가는 길
잠비아, 짐바브웨 모두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두 나라 모두 폭포 근처에 관광의 거점이 되는 도시가 있다. 잠비아의 리빙스턴은 인구 10만 명 정도의 도시로 국제공항도 있고 있을 것은 다 있어 대개 이쪽을 통해 접근하게 된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폴스는 인구 3만 명의 도시로 리빙스턴에 비하면 작지만 국제공항이 있고 관광용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 이쪽은 리빙스턴과는 달리 폭포에 붙어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아주 가깝다.

폭포가 워낙 긴데다 국경이 폭포 가운데를 지나가기 때문에 잠비아쪽에서 보는 폭포와 짐바브웨쪽에서 보는 폭포의 풍광이 다른데 짐바브웨쪽에서는 폭포의 대부분을 정면에서 보며 이동할 수 있지만, 잠비아쪽에서는 폭포의 일부분을 그것도 측면에서만 보게 된다. 특히 유량이 가장 많은 메인폴은 잠비아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잠비아 쪽에서 보는 폭포도 나름 볼만 하며 꽤 스릴넘치는 다리를 하나 건너가 볼 수 있다.

두 나라의 국경사무소는 폭포 인근에 있어 양쪽 지점을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데다 잠비아, 짐바브웨 두 국가는 통합 유니비자가 적용되어 별 부담없이 국경을 넘어가 양쪽 모두를 쉽게 볼 수 있으니 걱정은 하지 말자. 물론 면적이 넓기 때문에 하루에 다 보는 것은 힘들다.[나무위키]

2019년 12월, 가뭄으로 폭포가 말라버렸다. 폭포 유수량은 1977년도 조사된 수치 1/60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빅토리아 폭포 주변 지역 야생동물도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빅토리아 폭포에서 북동쪽으로 450㎞ 떨어진 마나 풀스 국립공원은 가뭄으로 인해 황무지로 변해 먹이와 물을 찾지 못한 동물들이 쓰러지고 있다고 한다. 4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인하여 주변 나라들은 식량난에 빠지고 있는데 관광자원인 폭포조차도 말라서 관광객들이 실망하고 돌아가고 차츰 관광객들이 줄어서 가이드들도 비상이 걸렸다.[나무위키]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Victoria Falls National Park)은 짐바브웨 북서부에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폭포 지역에 있는 잠베지강의 남쪽과 동쪽 제방을 보호한다. 그것은 폭포 위 약 6킬로미터에서 폭포 아래 약 12킬로미터까지 더 큰 잠베지 국립공원에서 잠베지강을 따라 뻗어 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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