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미국 & 캐나다

2019북미(31)미국,워싱턴,의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2019.8.4)

여행복사꽃 2023. 8. 24. 13:37

미국 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은 미국 연방 정부의 입법부인 미국 의회가 있는 건물이다.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 동쪽 끝에 있는 캐피틀힐 위에 자리잡고 있다. 국회의사당은 지리상 컬럼비아 특별구의 중심에 있지는 않으나, 4개 지구를 가르는 원점이 된다.

초기 건물은 1800년에 완공되었다. 허나 1814년에 영국군이 쳐들어와 워싱턴 D.C에 불을 지르면서 의사당도 함께 전소하여 미국 초기에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의사당은 약 5년 후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점차 미국의 국력이 팽창함에 따라 건물의 규모도 점점 커져갔다. 특히 위에 거대한 돔이 위에 얹혔고, 상원 회의장이 북쪽 건물에, 하원 회의장이 남쪽 건물에 각각 설치되며 미합중국의 정식 의사당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백악관과 대법원 건물같이, 미국 국회의사당 또한 백색을 바탕으로 한 우아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미국 국회의사당은 동쪽과 서쪽 면이 정면인데, 이를 프론트, 즉 front라고 부른다. 다만 동쪽 면에서만 외교 사절 접견과 같은 공식 행사들이 이루어진다.[위키백과]

미국 국회의사당의 건설
1793년에 신생 미합중국 정부가 새로운 국회의사당이 필요함을 깨닫고, 새 국회의사당 설계안을 공모하였다. 이 공모전에서 토머스 제퍼슨과 조지 워싱턴에 의하여 아마추어 건축가였던 윌리엄 손튼의 건축안이 채택되었고, 이 설계에서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주랑들과 판테옹에서 영감을 얻어 조금 더 건축물을 장대하고 우아하게 만드는 쪽으로 약간 확장시켜 드디어 새로운 국회의사당의 건축이 확정되었다.

버지니아의 채석장에서 실어온 대리석들을 이용하여, 드디어 1791년 12월에 캐피틀 힐의 외곽 벽이 신축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793년 9월 18일,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8명의 다른 프리메이슨 단원들과 함께 프리메이슨 정복을 입고 삼각대와 도르래를 사용하여 국회의사당의 주춧돌을 세웠다. 참고로 이 주춧돌은 당시 유명한 대장장이였던 칼렙 벤틀리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상원 회의장은 1800년에 완공되었다. 상원과 하원은 북쪽 날개에 있는 회의장을 공유하였고, 나중에 몇 년 후에 하원 회의장이 1811년에 임시로 완공되기 전까지 이와 같은 상황은 지속되었다. 참고로 이 임시 하원회의장이 있던 자리가 바로 현재 국회의사당의 석조 돔이 위치한 자리이다. 어찌되었든, 하원의원들은 1807년에 완공되지도 않은 하원회의장을 사용해야 했고, 심지어 상원 회의장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의를 할 정도였다.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처음 열린 국회 본회의는 1800년 12월 17일에 있었고, 나중에는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요청으로 입법부 간부들이 모두 의사당으로 옮겨가 자리를 완전히 잡게 되었다.[위키백과]

국립정원 입구 표지판

돔 개축 공사
1850년의 공사 동안, 국회 의사당은 양쪽으로 크게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회 의사당의 높이 또한 크게 높아졌다. 본래 있던 주철 재질의 낮은 돔은 훨씬 더 거대한 석조 돔으로 대체되었다. 1855년에는 아예 옛 돔 자체를 헐어내고 '웨딩 케이크'와 같은 모양의 백색 돔으로 짓기로 합의가 지어졌다. 토머스 월터는 유럽 여행 때 자신이 봤던 앵발리드, 세인트 폴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과 도면으로만 접한 성 이사악 대성당의 돔을 참고해 직경 29m짜리 돔을 설계했다. 네 곳의 돔 모두 모두 전통적인 양식에 따라 기부와 두 개의 드럼, 둥근 지붕, 채광 정탑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성 이사악 대성당의 돔은 주철로 건설되었다. 월터는 국회의사당의 돔을 지을 재료로 성 이사악 대성당을 본떠 주철을 선택해 돌과 비슷한 질감 효과를 내면서도 내연성이 강하고 더 경제적인 재료를 골랐다. 월터의 돔은 외부의 주철 돔과 내부의 석조 돔으로 된 이중 구조이며, 돔 천장에 뚫린 채광 구멍을 통해 콘스탄티노 브루미디의 프레스코화 '워싱턴의 신격화'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돔은 1855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국회의사당은 연방의 영속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판단에 따라 돔 공사를 재개한다는 결정이 1862년에 내려졌다. 1863년 12월 2일 '자유의 여신상'이 돔 꼭대기의 채광 정탑에 올려졌고, 1866년에 돔이 완공되었다. 공사에는 4천여 톤의 주철이 사용되었으며, 외벽은 흰색으로 칠해 석재 돔과 같은 질감을 나타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해 유해가 의사당 돔 지붕 아래 로툰다 홀에 안치됐을 때도 콘스탄티노 브루미디는 자신의 대작 '워싱턴의 신격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돔 맨 꼭대기에 자리잡은 '자유의 여신상'은 186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약 4,041,100kg에 달하는 무게를 자랑한다.[위키백과]

후기 확장 공사(1)
의사당의 거대한 새 돔이 완공되자, 이 거대한 무게로 인하여 1828년에 만들어진 동쪽 주랑 현관이 점차 기울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1904년에 재공사를 거쳤다고 한다. 다음의 대대적인 재공사는 1958년에 시작되었다. 이 때 동쪽 주랑 현관을 약 33.5m정도 더 확장하였으며, 이 공사를 실시하던 중인 1960년에는 돔 또한 다시 한번 개축과 보존 작업을 거쳤다. 원래 있던 주랑들을 백색 사암으로 똑같이 재복제하여 새로운 주랑을 만들어 건물 전체의 너비를 확장하였으며, 1962년에는 이 공사로 인하여 본디 외벽이었던 것이 내벽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의사당을 떠받치던 코린토스 양식 기둥들 일부가 떼어져 나갔으며, 1984년에 러셀 페이지가 미국 내셔널 아보레툼에 이 기둥들을 다시 설치할 때까지 수장고 속에 보존되어 있었다. 이 기둥들은 아보레툼에 있는 반사 호수 옆에 세워졌다.[위키백과]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후기 확장 공사(2)
1960년 12월 19일에는 국립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건축물 디자인 순위에서 6위에 올랐다. 참고로 국회의사당은 특히 유럽에 존재하는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같은 대성당들의 건축 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의사당 특유의 웅장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상원 의사당과 하원 의사당 위에는 각각 하나씩 국기 게양대가 설치되어있는데, 의회가 개회되었을 때만 이 곳에 성조기를 게양한다. 1993년 9월 18일에는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조지 워싱턴이 프리메이슨 복장을 입고 의사당의 주춧돌을 놓던 행사를 다시 재연하였다.

2000년 6월 20일, 의사당 방문자 센터에 있던 대리석 바닥이 깨져 다시 복구하였다. 2001년부터 2008년동안 의사당의 동쪽 프론트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취임식이 열리던 자리가 되었고, 점차 방문자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프론트 구조물 아래에 거대한 규모의 지하 시설을 지어 방문자들이 조금 더 유동성 있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수되었다. 이 새롭게 만들어진 지하 구조물은 거대한 출입 홀, 전시장, 방문자 센터, 식당, 화장실 등과 함께 심지어는 전기선과 수도관까지 포함하고 있다.

2014년에는 의사당 돔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2017년에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기 전까지 완성짓는 것으로 계획이 잡혔다. 원래는 2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돔의 기둥들을 다시 보수하는 것에 그치려 하였으나, 돔을 떠받치고 있던 주철 구조물에 약 1,300여개에 달하는 균열이 생겼고, 결국 상원에서는 6천 1백만 달러를 추가적으로 투입하여 돔의 외관을 아예 다시 뜯어고치기로 합의하였다. 대부분의 공사는 2014년 봄에 시작되어 2016년 초에 끝났고, 돔을 둘러싸고 있던 철골 가림막들은 2016년에 모두 철거되어 현재는 워싱턴을 방문하는 모든 방문객들이 의사당의 아름다운 외관을 곧바로 볼 수 있다.[위키백과]

의사당 깃발
의사당 위에는 총 4개의 깃발 게양대가 있다. 두 개의 게양대는 돔의 동쪽과 서쪽 정면에 1개씩 꽃혀있고, 이 게양대는 1차 세계대전부터 국기가 정식으로 게양되기 시작되어 현재까지 단 한번도 깃발을 휘날리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나머지 2개의 게양대는 각각 상원 회의당 위, 하원 회의당 위에 꽃혀있는데, 이 게양대에는 의회가 개회했을 때에만 국기가 게양된다. 국기 게양대 관리자들은 돔 아래에 있는 통로를 통하여 깃발들을 내리거나 올리거나 등 활동을 하고, 몇몇 깃발 게양대들은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상징적인 의미에서 꽃혀 있는 경우가 있다. 참고로 전쟁 영웅이나 국가 유공자들이 죽었을 때에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가끔씩 조기를 게양하곤 한다.[위키백과]

의사당 내부
의사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은 바로 그 위에 얹혀있는 돔이다. 이 아래에는 로툰다가 있고, 이 곳에 그 유명한 '워싱턴의 신격화'가 그려져 있다. 돔 양 옆에는 2개의 거대한 날개가 세워져 있고, 이 중 북쪽에 있는 날개가 바로 상원 회의당이며 남쪽에 있는 날개가 하원 회의당이다. 이 회의당들 위에는 관광객용 갤러리들이 꾸며져 있어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관광객들은 이 곳에서 개회식이나 의원들의 모습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갤러리와 회의당들 모두 의사당과 같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의사당 밑에 있는 거대한 터널과 내부 지하철이 캐피틀힐에 자리한 다른 건물들과 의사당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데, 의사당 내부에 있는 모든 방과 대기실들은 각각 S, 즉 상원(Senate)나 H, 즉 하원(House)로 나뉘어 있다[위키백과]

의사당 예술
의사당은 미국 고전 예술의 총집합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이탈리아/그리스계 미국인 콘스탄티노 브루미디는 상원 건물의 1층 홀의 천장화를 포함하여, 의사당 전체를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 채웠다. 특히 상원 건물의 흔히 '브루미디 복도'라고 잘 알려져 있는 복도에 그려진 벽화들은 미국 역사의 가장 중요하거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묘사해 놓은 곳인데, 예를 들면 벤자민 프랭클린을 묘사한 작품, 존 피치의 발명의 순간, 로버트 풀턴 등이 그려져 있다. 벽화에는 인물 외에도 식물과 동물들도 그려져 있는데, 이 생물들은 모두 미 대륙에 자생하는 것들만 모아 그려놓은 것이다. 브루미디는 미래의 화가들을 위하여 복도에 빈 여백들을 매우 많이 남겨놓았고, 후대에 미국의 영광스러운 날들마다 이 곳에 새롭게 그림들이 그려졌다.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승무원 등의 초상화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미국의 독립 선언(1819)

브루미디는 의사당 중앙 홀의 로툰다(고전 건축에서 원형 또는 타원형 평면 위에 돔 지붕을 올린 건물 혹은 내부공간)를 장식하는 데에도 큰 열정을 쏟았다. 그는 돔 바로 아래에 있는 '워싱턴의 신격화'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워싱턴의 신격화는 약 11달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며, 브루미디가 약 55m 높이에서 밧줄을 매달고 겨우겨우 칠을 해야 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워싱턴의 신격화라는 작품 자체에 워싱턴을 일종의 신성하게 미화시키려는 의도 자체가 깔려있었기에, 이 작품은 조지 워싱턴을 처음으로 미합중국의 '국부'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종종 여겨지고는 한다. 작품 속 워싱턴은 13명의 처녀 들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고, 그 아래 더 큰 원 속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여신들이 함께 장식되어 있다. 돔 하반부에 장식되어 있는 프리즈 속에는 미국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모습,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으로 조종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프리즈를 채워나가는 작업은 1878년에 시작되어, 워낙 장대한 작업이었던지라 1953년이 되어서야 끝마칠 수 있었다. 워낙 긴 시간동안 작품이 진행되었기에 이 프리즈를 그린 화가는 총 4명이다. 첫째는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둘째는 필리피노 코스타기니, 셋째는 찰스 아이어 위플, 마지막으로 알린 콕스 등이 있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