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triumphal arch , 凱旋門
▲중요한 사람이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다. 외따로 세우기도 하지만 흔히 길 양쪽에 걸쳐지도록 만들며 개선행진을 위한 것은 대부분 길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기본 형태는 아치로 연결된 2개의 기둥 위에 아티카라고 하는 상부구조를 씌운 것이다.
4세기 초 로마에는 개선문이 36개가 있었으며 아치통로와 옆면에는 황제의 승리와 업적을 묘사하는 그림을 새겼다. 오늘날 로마에는 3개의 개선문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개선문 가운데는 나폴리에 있는 알폰소 1세 개선문(1453~70), 파리에 있는 17세기의 생드니 문과 생마르텡 문, 그리고 장 샬그랭이 지은 '개선문'(1836)이 유명하다.
▲중요한 사람이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다. 외따로 세우기도 하지만 흔히 길 양쪽에 걸쳐지도록 만들며 개선행진을 위한 것은 대부분 길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개선문은 고대 로마 건축에 속하지만 그 기원과 의미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 성문이나 성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립적 구조물이었으며 로마군이 승리를 거둔 뒤 로마의 성스러운 도시구역(포메리움)에 들어가기에 앞서 통과해야 했던 포르타 트리움팔리스(Porta Triumphalis)와도 뚜렷이 다르다.
개선문의 기본 형태는 아치로 연결된 2개의 기둥 위에 아티카(attica)라고 하는 상부구조를 씌운 것으로, 아티카는 조각상(彫刻像)을 놓는 대좌로 구실했고 기념적인 문구가 새겨지기도 했다. 초기 개선문의 아티카에는 개선마차를 탄 승리자상이 많으나 나중에 만든 것은 황제상들뿐이다. 따라서 개선문은 아주 중요하고 명예로운 일을 기념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개선문에 관해 언급했던 고대 작가인 대(大)플리니우스(AD 23~79)도 그렇게 해석한 바 있다.
공화정 이후에 지은 개선문은 거의 없으며, 조각상이 있는 3개의 개선문이 로마에 있었으나 그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개선문은 제정시대(BC 27~AD 476)에 세워진 것이다. 4세기초 로마에는 이런 기념물이 36개가 있었으며 이 제정 양식 구조물은 때로 높은 중앙 아치가 양쪽 아치를 거느리는 세 아치꼴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개선문은 정면이 대리석 기둥으로 되어 있고, 기둥과 아티카에는 장식된 코니스(처마돌림띠)가 붙어 있었으며 아치통로와 옆면에는 황제의 승리와 업적을 묘사하는 그림을 새겼다.
오늘날 로마에는 3개의 개선문이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승리를 묘사한 부조가 새겨진 티투스 개선문(81)과 파르티아인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셉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203~205)이 있으며 도미티아누스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썼던 여러 재료를 뒤섞어 장식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312)이 있다. 그 밖에 수사·아오스타·리미니·폴라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개선문과 안코나·베네벤토에 있는 트라야누스 개선문, 트리폴리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개선문,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랩티스 마그나에 있는 셉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지어진 개선문 가운데는 나폴리에 있는 알폰소 1세 개선문(1453~70), 파리에 있는 17세기의 생드니 문과 생마르텡 문, 그리고 장 샬그랭이 지은 '개선문'(1836)이 유명하다.
런던에 있는 존 내시의 마블아치(1828 설계)와 하이드파크코너아치(1828 설계), 뉴욕 시에 있는 스탠퍼드 화이트의 워싱턴아치(1895 완성)도 유명하다.[다음백과]
▲에투알 개선문(프랑스어: Arc de triomphe de l'Étoile)은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서쪽 끝, 샤를 드골 광장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개선문이다. 개선문의 위치는 총 3개의 아롱디스망에 걸쳐있는데, 남서쪽으로 16구, 북쪽으로 17구, 동쪽으로 8구가 자리하고 있다.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개선문 아래에는 당시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둔 모든 승전보들과 지휘관들의 이름이 양각되어있다. 개선문 아래에는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무명용사들의 무덤이 위치하여 있다.[위키백과]
▼1792년(또는 라 마르세유) 조각 단의 출발, 프랑수아 루드의 개선문, 드 레투알의 남쪽 정면
Départ de 1792 - 다른 이름으로는 라 마르세예즈가 있다. 8월 혁명으로 프랑스 제 1공화국이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 곳에는 날개를 단 자유의 여신이 시민들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제 1차 세계대전에 자원적으로 참전하러 떠난 이들, 그리고 1915년에 프랑스에 자금을 돌려준 이들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
1792년 출발>은 워낙 유명한 조각품이라, 라 마르세예즈라는 이름이 따로 붙었다. 이 작품은 프랑수와 휘드(François Rude)의 작품으로, 여인으로 의인화된 프랑스가 자신의 국민들을 이끌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 육군 원수의 벨트 버클의 장식 도안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위키백과]
▼Le Triomphe de 1810 (The Triumph of 1810), The Triumph of Napoleon (나폴레옹의 승리)
▲Le Triomphe de 1810 - 쇤브룬 조약을 기념하고 있다. 승리의 여신이 나폴레옹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무명 용사 무덤의 영원한 불꽃
▲개선문의 바로 아래에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무덤이 있다. 이는 1920년에 독일이 항복한 날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이때 이 곳에 절대로 꺼지지 않는 성화가 점화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 성화는 4세기에 베스타 신전의 성화가 꺼진 이후, 서양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점화된 Eternal Flames, 즉 꺼지지 않는 성화이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지금은 2개의 세계대전에서 죽은 이들 모두를 기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매년 11월 11일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추모식이 열리는데, 이는 1920년 11월 11일에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한 날이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일부러 11일에 여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본디 판테온에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묻으려 하였으나, 국민들의 의견으로 인하여 유해가 결국 개선문 아래에 묻히게 되었다. 1920년 11월 20일에 관들이 개선문 아래 지하 1층에 묻혔고, 1921년 1월에 공식적으로 안장되었다. 무덤 위의 석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졌다. 'ICI REPOSE UN SOLDAT FRANÇAIS MORT POUR LA PATRIE, 1914-1918'.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 곳에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프랑스 병사들이 잠들다, 1914-1918'이라는 뜻이다.[위키백과]
▼샹젤리제 거리(아브뉘 데 샹젤리제, Ave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는 마리 드 메디시(Marie de Médicis)가 튈르리 정원에서 이어지는 산책길을 만들게 하여 만들어졌는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조성으로 유명해진 르 노트르(Le Nôtre)에 의해 조성되었다. 나중에 그리스 신화에서 낙원이라는 의미의 앨리제를 따서 ‘앨리제의 뜰’이라는 뜻의 샹젤리제로 불리게 되었다. 실제로 샹젤리제는 용사들의 영혼이 머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장소 이름이다.
샹젤리제 거리는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나무들로 조성된 전체 약 2.3km, 폭이 약 70m의 거리로 개선문 쪽은 화려한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고 콩코르드 광장 쪽으로는 울창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나폴레옹 3세 때인 19세기 후반 파리의 부호들과 정치인, 예술가들이 개인 저택을 갖게 되면서 세련된 취향과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레스토랑과 유명 브랜드,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이곳은 파리 하면 떠오르는 노천카페로도 유명하다.
프랑스인들에게 샹젤리제는 축구 경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몰려드는 곳 중 하나이고,1840년 나폴레옹의 유해가 이 거리를 통해서 지나간 후에는 승리의 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ENJOY파리]
▲파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로들 중 하나.
공식 이름은 Avenue des Champs-Élysées(프랑스어로 '엘리시온가(街)'라는 뜻
개선문에서부터 콩코르드 광장까지 1.88㎞로 뻗어 있다. 이 대로는 샹젤리제 원형 광장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콩코르드 광장과 그 너머 튀일리 공원을 향한 아래쪽 부분은 공원이며, 박물관·극장·식당 등이 있다. 개선문을 향한 위쪽 부분은 전통적으로 사치품 상가, 호텔, 식당, 노상 카페, 극장, 은행, 사무실들이 있던 곳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점차 쇠퇴하여 이제는 즉석요리 식당, 화려한 영화관, 기념품 행상인, 노점상, 항공사 사무실, 상점가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17세기에 처음 설계되었을 때는 당시 파리 외곽에 속하던 넓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센 강을 따라 튀일리 궁까지 이어지는 도로인 '쿠르 드 라 렌'('여왕의 도로')을 포함했다. 17세기말 앙드레 르 노트르가 넓고 그늘이 많은 대로를 조경했고 오늘날 개선문이 서 있는 언덕 마루까지 이 길을 연장했다.
18세기에는 그 전체가 샹젤리제라고 불리게 되었다. 개선문이 1836년 준공되었고, 1860년대에 이르러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 파리의 대로들을 완전히 재설계하면서 샹젤리제 대로는 궁·호텔·식당들이 있는 대로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