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8.14(월)
-Belfort 조식 후
-T.I.R(유로레일) [8:20 - 12:16] 열차탑승하여 파리 이동 [벨포트 - 파리 : 약 4시간 30분 소요]
-파리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세계 3대 박물관 루브르박물관(내부)
Belfort 호텔 아침식사
▼프랑스 국유 철도
(프랑스어: 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 SNCF)
▲프랑스 국유 철도(프랑스어: 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 SNCF)는 프랑스 전국의 철도망을 총괄하는 철도운영법인이다. 정부가 보유하는 공기업이며, 본사는 파리에 있다. 총 궤간은 1,435 mm이며, 32,000 km에 달하는 철도 시설이 있다.[다음백과]
▼벨포르역 Belfort
▲벨포르역(프랑스어: Gare de Belfort)은 프랑스 동부의 벨포르 지역, 벨포르 마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차역이다. 파리-뮐루즈 및 벨포르-델선에 위치해 있다. 벨포르에는 TER 그랑 Est 및 TER 부르고뉴-프랑쉐-콤트의 지역 열차가 있다.[위키백과]
▼벨포르(belfort)에서 파리로 가는 차창 밖 풍경 (4시간 30분 소요)
▼파리 동역 Gare de l'Est
▲파리 동역 Gare de l'Est
파리의 7개 대형 철도역 중 하나로 프랑스국철이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독일 국경인 알자스-로렌 지역과 독일에서 들어온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기차역이다. 연간 약 4,124만명(2019)의 이용객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
1849년에 개업한 역으로 무려 1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개업 당시 파리-스트라스부르 철도회사 소속역으로 파리-스트라스부르, 파리-뮐루즈(Mulhouse) 간 철도가 부설되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개업 당시의 이름은 스트라스부르 역(Gare de Strasbourg)이었다. 과거부터 프랑스 동부와 독일 서부로 이어주는 열차의 종착역으로 중요도가 엄청 컸다. 또한, 오리엔트 급행 노선 중 파리-부쿠레슈티/이스탄불 행 노선의 시종착역이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회사이름을 동철도회사(Chemins de Fer de l'Est)로 바꾼 뒤 역 이름이 파리 동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1] 또한 파리-뮐루즈와 파리 근교 뱅센(Vincennes)을 연결해 주는 뱅센선(Ligne de Vincennes) 전용으로 1859년에 '파리 바스티유 역(Gare de la Bastille)'을 개업했지만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하여 알자스-로렌 일부가 독일로 넘어가는 바람에 파리 바스티유 역의 노선들이 죄다 파리 동역으로 이관되게 된다. 이후 동역은 도시간 열차 및 국제선 열차 중심으로, 바스티유 역은 파리 동부 교외 열차 중심으로 정리가 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2]
역정보
현재 이 역은 주로 프랑스 동부의 샹파뉴-아르덴, 알자스, 로렌 내에 있는 스트라스부르, 뮐루즈, 낭시, 메스 등의 대도시를 잇는 국내선과 룩셈부르크, 프랑크푸르트(M), 슈투트가르트, 뮌헨, 베를린 등을 잇는 국제선을 운용하고 있다. 국제선의 경우 도이치반의 ICE와 TGV가 공동편성돼 있다.
또한 관광열차로 운행되는 베니스-심플론 오리엔트 급행의 런던 발 베네치아 착[3]/로마 착[4] 열차가 이곳을 경유하거나 여기서 출발하는 이스탄불 행 노선의 출발역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스트라스부르, 뮌헨을 경유하여 파리와 빈을 오가는 Nightjet가 이 역에서 운행을 시작, 주 3회 운행하고 있다(하절기에는 2회 추가 운행).
이 역은 실제로도 파리에서 동쪽에 위치해있지만, 사실은 프랑스국철로 국유화되기 전에 운영하던 사철회사 이름이 동철도회사(Chemins de Fer de l'Est)라서 저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파리 북역이 '북철도회사'의 소속역이었고, 파리 리옹역을 운영했던 회사가 파리-리옹·지중해 철도회사(PLM)라 저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개업 후 총 세 번의 개수를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단, 역사 외관 및 내부는 지속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 160년이나 된 오래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다는 인상을 준다.
파리 북역과는 길 하나(Boulevard de Strasbourg)를 사이에 두고 단 5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 파리에 처음 온 여행자들은 '분명 북역인데 북쪽이 아닌 동역과 근접해 있네?' 하며 의아해한다. 그리고 이 두 역은 파리에서 치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악명 높은 파리 10구에 위치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국내 여행책자에서는 이 곳을 지날 때 범죄에 조심하라고까지 써져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람 지나갈 곳 전혀 못 되는 것은 아니니 선입관은 갖지말자. 동역, 북역 주변에 인도, 파키스탄, 중동 이민자촌이 형성되어 있어 오히려 파리 내 명소들이 즐비한 도심과 또 다른 느낌이 있다. 또한 파리 도심지에 비해 음식값도 싼 것도 장점.[나무위키]
▼에스카르고(Escargot)
▲에스카르고(Escargot)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용 달팽이 요리를 말하며 끓는 물에 데쳐 마늘과 버터, 파슬리 등을 껍질 속에 넣고 오븐이나 미니 오븐에 구워 낸다. 스튜로 만들거나 볶아내어 먹기도 하고 주원료는 헬릭스포마티아이며 모양과 재료가 다양한 프랑스 요리를 말한다. 애벌레로 만들기도 하며, 보통 프랑스에 관광을 온다면 사람들은 에스카르고를 주로 먹는다. 주로 디저트로 즐긴다. 달팽이 요리여서 처음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먹게 된다면 에스카르고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다. 프랑스 요리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페인 음식이다.[위키백과]
▼파리의 L'OpenTour 버스 투어
▲OpenTour 는 파리에서 수도 주변 의 매우 다른 3개의 노선으로 투어 버스를 운영하는 회사이며, 프랑스의 다른 세 도시인 마르세유와 니스에서도 버스 투어를 운영합니다.
OpenTour 회사는 지붕이 열려 있는 대형 2층 버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찾기가 매우 쉽고 원래는 밝은 노란색과 녹색을 띠지만 현재는 프랑스 국기의 색상을 사용하여 앞부분이 빨간색, 가운데가 흰색, 뒷부분이 파란색입니다. 버스 뒷부분에 있으며 파리 시내를 도는 3개의 다른 노선에서 일년 내내 매일 운행합니다.
아이디어는 패스를 구입할 때 투어 버스를 타고 파리 주변의 기념물 , 랜드마크 및 관광 명소 를 방문한 다음 다른 버스를 타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40개 이상의 다른 l'OpenTour 노선에서 정차합니다. 또한 L'OpenTour 버스를 이용하면 날씨가 좋을 때 탁 트인 지붕에서 파리의 환상적인 전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설을 통해 빛의 도시와 다양한 랜드마크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구매한 각 티켓과 함께 제공되는 무료 헤드폰 세트. 물론 프랑스어로 제공되지만 특정 채널을 선택하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및 한국어로도 해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리 OpenTour 버스 투어의 또 다른 주요 이점은 3개의 서로 다른 경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경로 사이를 쉽게 전환할 수 있으며 몽마르뜨와 같은 파리의 다른 지역을 한 번도 마치지 않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센 강을 따라 가는 것도 좋아 한다면 L'OpenTour는 8개의 정류장이 있는 Batobus 수상 버스와 연결되어 있으며 두 곳을 결합한 티켓을 구입하여 기념물을 볼 수 있습니다. [구글검색]
▼루브르 박물관
Musée du Louvre
▲파리에 있으며, 원래는 12세기에 필리프 2세가 지은 궁전이었다. 1546년 프랑수아 1세가 그 터에 루브르 궁전을 지었고, 그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증축과 개조가 이루어졌다. 1793년 혁명정부가 국립중앙미술관을 설치·공개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강을 따라 뻗은 남쪽 화랑과 4각형 안마당을 둘러싼 궁전의 4면을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 예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개축작업을 했다. 각종 편의 시설을 위한 지하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미국 건축가 I.M.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가 자리잡았다.
루브르는 BC 7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사모트라케의 승리>·<밀로의 비너스>·<모나리자> 등이 있다.[다음백과]
▲파리에 있는 12세기 존엄왕 필리프 요새지 오른쪽 기슭에 지어진 커다란 궁전의 일부이다. 1546년 예술품 수집가 프랑수아 1세가 이 낡은 성곽을 부수고 그 터에 새로운 왕궁인 루브르 궁전을 짓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거의 모든 왕들이 증축해왔다. 오늘날의 루브르 중 일부는 프랑수아 1세 때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의 감독하에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카레 궁 남서쪽 부분이며, 대부분의 루브르 건축시설은 그뒤 17세기 루이 13, 14세 때 추가 조성된 것이다.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왕을 위해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수집했고, 루이 14세와 그의 대신 마자랭 추기경은 영국 찰스 1세의 소장품을 포함한 훌륭한 예술품들을 수집했다. 건축가 클로드 페로와 루이 르 보, 실내장식가이며 화가인 샤를 르 브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루브르 왕궁 중 콜로나드[柱廊] 부분을 설계했다. 1682년 루브르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로 왕실을 옮김에 따라 폐궁되고, 18세기 들어서 이곳을 공공박물관으로 쓰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지비에 백작이 대전시장의 건축과 설계를 지원하고 중요한 예술작품들을 계속해서 모아들였다.
1793년 혁명정부가 대전시장에 국립중앙미술관을 설치·공개했다. 나폴레옹 통치하에서는 카레 궁과 리볼리 가(街)를 끼고 북쪽 파빌리온에 잇댄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19세기에 서쪽으로 뻗은 전시장들과 파빌리온들을 거느린 2개의 주요 윙(wing:건물의 옆으로 뻗은 부분)이 완성되고 후에 나폴레옹 3세가 그것들을 전시장으로 개관시켰다. 완성된 루브르는 2개의 4각형 본관과 그것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2개의 커다란 정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 복합체이다.
1980년대에 들어 루브르는 방문객들의 접근과 편의에 더욱 이바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축작업을 개시했다. 이로써 강당, 관광버스 주차장, 식당, 사무실, 상점, 전람실, 창고, 주차장 등을 수용한 거대한 지하단지가 나폴레옹 궁과 카루젤 궁의 중앙 정원 밑으로 조성되었다. 이 단지로 들어서는 지면 높이의 입구는 나폴레옹 궁 중심에 있으며, 그 위쪽에 미국 건축가 I.M. 페이가 디자인한 강철과 유리로 된 피라미드가 자리잡고 있다. 1989년 부대시설과 대중오락시설을 갖춘 지하단지가 문을 열었다.
루브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 중의 하나이며, 이들 작품은 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 모든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여기에 소장된 15~19세기 프랑스 그림들은 세계 최고이며,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바로크 시대 플랑드파, 네덜란드 화가들의 걸작도 소장되어 있다.
중세·르네상스·현대 예술품 전시장에는 프랑스 왕들의 보물 등이, 그리스·로마 고대미술품(에트루리아 예술품 포함)에는 건축물·조각품·모자이크·청동제품·장신구·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고대예술품 전시장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당시 가져온 수집품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기 위해 1826년에 세워졌다. 동방 고대예술품 전시장은 메소포타미아 예술품을 소장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1954년 그리스도교 고대예술품부가 설치되어 상아제품·유리·도자기·직물·금제품 및 그리스와 러시아의 성상을 포함하여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콥트 예술작품들이 분류·배치되었다.[다음백과]
▼루브르 피라미드(프랑스어: Pyramide du Louvre)
▲루브르 피라미드(프랑스어: Pyramide du Louvre)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루브르궁의 안뜰인 나폴레옹 광장(Cour Napoléon)에 설치된 거대한 유리 금속 피라미드이다. 3개의 작은 피라미드에 둘러싸인 가운데의 큰 피라미드는 루브르 박물관의 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디자인과 건설
루브르 피라미드에서 본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
1984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의뢰를 받은 미국의 중국계 건축가인 I. M. 페이에 의해 설계되었다. 1988년 3월 4일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참석한 준공식이 열렸으며 1989년 3월 29일에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구조물은 전체적으로 유리 조각과 금속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이는 21.6m에 이른다. 사각형 기초 부분의 측면 높이는 34m이고 전체 표면적은 1,000m2에 달한다. 유리 조각은 마름모 모양을 한 603개 조각, 삼각형 모양을 한 70개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라미드 구조물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니콜 샤르트랑 크놀(Nicolet Chartrand Knoll Ltd.), 프랑스 파리의 라이스 프랜시스 리치(Rice Francis Ritchie)가 설계하였다.
피라미드와 지하층 로비는 루브르 박물관의 원래 주출입구에 관한 일련의 문제 때문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기존의 출입구로는 매일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수많은 관람객들을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를 통해 입장하는 방문객들은 넓은 로비로 내려간 다음에 주요 루브르 건물로 올라간다.
디자인 역사가인 마크 핌로트는 I. M. 페이의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를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중앙 출입로에서 광대한 지하 로비로 안내함으로서 다양한 이유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분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계되었다. 루브르 피라미드의 거대한 골격 구성은 고대 폼페이의 저택에 있던 안마당을 연상시킨다. 공학적 주물과 케이블로 처리된 개구부는 회사 사무실 건물의 안마당을 연상시키고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인 철도 터미널이나 국제공항의 중앙 홀을 암시한다."고 평가했다.
몇몇 다른 박물관들은 이 개념을 복제했는데 특히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과학 산업 박물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2년 4월에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에 의해 개관한 돌핀 센터는 루브르 피라미드와 비슷한 피라미드를 갖추고 있다. 피라미드의 기초 부분과 지하층 로비 공사는 빈치 건설회사가 맡았다[위키백과]
▲루브르 피라미드 논쟁
루브르 피라미드는 건설 과정에서부터 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몇몇 파리 시민들은 현대 건축물은 프랑스의 고전 르네상스 양식과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된 죽음의 상징이라는 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결정된 허식적이고 거만하고 과격한 계획이라는 점,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I. M. 페이가 프랑스 파리의 상징하는 건축물을 설계하기에 부적절한 점을 이유로 들어 루브르 피라미드 건립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미술 평론가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건립된 장엄한 프랑스의 르네상스 건축물을 조작하는 행동은 신성 모독이라고 비판했고 이집트에서 온 죽음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프랑스 파리에 건립하는 행동은 시대 착오적인 침입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루브르 피라미드를 "파라오 프랑수아의 피라미드"라고 불렀다. 하지만 파리 시장을 역임하고 있던 자크 시라크가 루브르 피라미드 건설 계획을 지지하면서 루브르 피라미드는 파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