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 Masai
마사이 족의 생활
마사이 족은 동부 아프리카에 있는 케냐와 탄자니아의 건조한 초원 지대에 살고 있는 종족이다. 흑인종에 속하며 유목 생활을 하고 있다. 평균 173cm의 큰 키에 고수머리이다. 피부색은 짙은 갈색이며 말은 마사이 어를 사용한다. 원래 나일 강의 상류에서 농사를 짓다가 차츰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마사이 족은 3~4년마다 옮겨 다니는 유목 생활을 한다. 반원형의 낮고 작은 진흙집에서 살며, 비가 내릴 때에는 짐승 털가죽을 지붕에 덮는다. 15살 가량의 남자는 싸움을 할 수 있는 전사가 되는데, 전사는 다른 종족의 소를 빼앗고, 다른 종족의 습격을 막는 것이 기본 임무이다. 마사이 족 사회는 남자 중심의 몇 가구가 모여 부락을 이룬다. 소 · 염소 · 양 등을 기르고, 소의 피와 젖 · 고기를 먹으며 산다.[다음백과학습그림백과]
전통적 습속과 풍습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 사는 유목 마사이족, 케냐의 삼부루인, 탄자니아에서 반유목생활을 하는 아루샤인·바라구유인이 여기에 속한다. 유목 마사이인은 1년 내내 무리를 지어 유목생활을 하며 거의 가축의 피와 우유만을 먹는다. 진흙으로 만든 집 주위에 크고 둥근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며 한 집에서 4, 5세대가 가축과 함께 거주한다. 일부다처제가 보통이며 같은 연령 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 결혼할 때는 신랑이 상당한 양의 가축을 신부값으로 치러야 한다.[위키백과]
부족의 구성과 전통 의식
이들의 사회는 많은 부계씨족으로 이루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2개의 반족(半族)으로 구성된다. 그렇지만 이들 사회 통합의 기초는 연령 집단이다. 이들은 같은 성년식 기간에 할례(割禮)를 받은 다음 하나의 연령 집단을 형성하는데 죽을 때까지 이 연령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위계가 높아지는데 한 등급은 대략 15년간 유지된다. 상하급 전사, 상하급 연장자 등으로 등급이 나뉘며 상급 연장자는 부족 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마사이 사회는 매우 평등하며 노예를 소유하지 않는다. 의식은 올로이보니라는 제의 담당자가 맡는데 이 사람은 정치적인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종교지도자이다.
케냐·탄자니아 정부의 처우 현황
오늘날 케냐와 탄자니아 정부는 마사이인이 정착 농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각각 지원하고 있다.[위키백과]
마사이족 창세신화
밧줄 타고 내려온 사람, 마사이족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지대에 분포하고 있는 마사이족은 원래 하늘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를 은가이(Ngai)라고 불렀고, 은가이는 신이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지상을 내려다 본 그들은 사람들의 세상에 가보고 싶은 충동에 은가이 신에게 허락을 구한다. 은가이 신은 허락을 하지만, 그 대신 조건을 단다.
"지상에 내려가도 절대로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소와 양과 염소를 내려 보내줄 테니 이 짐승들을 길러서 그 젖을 먹고 살아야 한다. 내 명령을 어기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아버지 은가이 신에게 약속을 하고 마사이족은 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지상의 여러 동물들에 욕심이 난 마사이족은 며칠도 못가서 은가이 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사슴 한 마리쯤이야 어떻겠어. 아마 모를실 걸. 동물들이 이렇게 많은데 "
마사이족은 사슴을 잡아먹었다. 하늘에서 이것을 지켜본 은가이 신은 화가 나서 하늘로 올라오는 밧줄을 잘라버렸다. 마사이족은 뒤늦게 후회하며 은가이 신에게 간절하게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젠 절대로 다른 짐승들을 잡지 않을게요.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밧줄을 내려주세요."
하지만 은가이 신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너희는 이대로 하늘로 되돌아올 수 없다. 다만, 내가 함께 내려 보낸 소와 양과 염소를 열심히 길러서 그 숫자가 내가 만족할 만큼 늘어났을 때, 하늘로 돌아올 수 있는 밧줄을 내려 주겠다."
마사이족은 은가이 신에게 용서받아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도 소, 양 , 염소를 열심히 기르며 그 수를 늘리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다음백과]
마사이족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거주한다. 가장 키가 큰 부족으로 평균 키가 173cm이며 칼리하리 사막이 주 생활권이다. 창 하나로 사자와 싸우며, 소의 수는 부와 비례한다. 사냥을 한 후 그 자리에서 동물의 피를 마신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횡으로 열을 지어 맨발로 달리는 용맹한 모습의 부족이 바로 마사이족이다.[다음백과]
마사이족 Masai
마사이는 원래 나일사하라어족의 샤리나일어군에 속하는 동수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언어학 용어이다.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 사는 유목 마사이족, 케냐의 삼부루족, 탄자니아에서 반유목생활을 하는 아루샤족·바라구유족이 여기에 속한다. 유목 마사이족은 1년 내내 무리를 지어 유목생활을 하며 거의 가축의 피와 우유만을 먹는다. 진흙으로 만든 집 주위에 크고 둥근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며 한 집에서 4, 5세대가 가축과 함께 거주한다. 일부다처제가 보통이며 같은 연령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 결혼할 때는 신랑이 상당한 양의 가축을 신부값으로 치러야 한다.
이들의 사회는 많은 부계씨족으로 이루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2개의 반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사회통합의 기초는 연령집단이다. 이들은 같은 성년식 기간에 할례를 받은 다음 하나의 연령집단을 형성하는데 죽을 때까지 이 연령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위계가 높아지는데 한 등급은 대략 15년간 유지된다. 상하급 전사, 상하급 연장자 등으로 등급이 나누어지며 상급 연장자는 부족 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마사이족 사회는 매우 평등하며 노예를 소유하지 않는다. 의식은 올로이보니라는 제의 담당자가 맡는데 이 사람은 정치적인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종교지도자이다. 오늘날 케냐와 탄자니아 정부는 마사이족이 정착 농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다음백과]
마사이족
19세기 중엽까지 마사이족은 동아프리카의 가장 용맹스러운 종족으로 입지를 강화시킨다. 이들은 북에서 남으로 500마일, 동에서 서로 50마일의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마사이는 소를 목축하는 유목민으로서 이들의 종족 설화에 의하면 태초에 하느님으로부터 지상에의 모든 소를 부여받아 그들만이 소를 소유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웃 부족의 소를 급습, 탈취하는 싸움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싸움을 즐기는 이들 양측의 전사(戰士) 집단은 여인들의 격려 속에 동족끼리의 싸움으로 승자는 소를 획득하였다.
마사이는 키쿠유에 비해 대규모의 집단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정착 형태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결혼한 사람들의 집단은 30 내지 50여 채의 오두막이 집단으로 지어진 곳에 울타리가 쳐진다. 대략 12가정이 정착하며, 각 가정마다 각자의 출입 대문을 두고, 여러 명의 부인을 둔 이들은 대문의 왼쪽에 첫째 부인을, 오른쪽에 둘째 부인을, 다시 왼쪽에 셋째, 오른쪽에 넷째, ··· 순으로 배치한다. 전사 집단들의 주거지는 마니아타(Manyata)라고 통칭되며, 50에서 100여 채의 오두막이 담장 없이 지어져 있다. 이들의 주거 형태가 비교적 견고하지 못한 이유는, 이들이 유목민으로서 이동하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높이는 겨우 5피트 정도이며, 나뭇가지와 막대로 형태를 이룬 뒤 쇠똥과 진흙으로 덮여진다.[네이버지식백과]
마사이는 농작물을 재배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가축, 특히 소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당시 한 가족당 200~300마리의 소를 길렀으며, 우유, 쇠피, 고기 등을 주식으로 하였다. 남자들은 소를 돌보는 일과 전투에 종사했으며, 여자들은 이동시 집을 짓는 일과 집안일을 전담했다. 이들은 운반 수단으로 당나귀를 활용하였다. 젊은이들은 전사로서의 전쟁 참여를 주임무로 하였으며, 평소 노동을 하는 일이 없었다. 타 부족을 공격할 경우 마니아타의 전사들은 마사이의 최고 지도자이며 제사장인 라이본(Laibon)과 주술사의 허락을 얻어야만 한다.
타부족을 많이 죽인 전사는 사자머리와 갈기를 쓰고, 얼굴은 타조의 깃털로 장식된다. 마사이는 젊은이들의 성인식 통과 의례 과정 중 용맹성을 인정받기 위해 사자를 한 마리 죽여야 하기도 했다. 마사이는 19세기 종족의 분리로 인해 부족 간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1870년경 마사이족의 세력이 쇠퇴하게 되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공동 유목 생활을 하던 마사이는 분리가 되며, 이로써 이웃 타부족의 세력이 증가된다. 또, 유목 마사이와 크와비(Kwavi) 간의 싸움이 수많은 인명 손실을 초래한다.[네이버지식백과]
마사이족
<개요>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에 거주하는 유목민족. 인종은 나일로트계(系) 흑인종이다.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마사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모두 합친(19세~65세 즉, 청년부터 노인까지) 평균 키는 177㎝로 매우 장신을 자랑하며[2] 원래는 나일사하라어족[3]의 샤리나일어군에 속하는 동수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언어학 용어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것이 부족명으로 굳혀진 케이스.
좁게는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 사는 유목 마사이족을 뜻하나 넓게는 케냐의 삼부루족, 탄자니아에서 반유목생활을 하는 아루샤족과 바라구유족도 포함해서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 사는 유목 마사이족에 대한 설명을 기재한다.[나무위키]
몇몇 부족들이 뭉쳐서 1개의 집단을 이루며 생활한다. 소똥으로 만든 반원형의 지붕이 낮은 집을 짓고 가시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치며 생활하는데,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는 가시나무가 굉장히 많아 구하기 쉽고 가시가 달려 동물들을 방어하기 유용하기 때문. 잠시 머무는 의미가 강해 규모가 크고 웅장한 느낌이 아닌 조그마한 창고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집에 4~5가구가 같이 생활한다. 우기에는 진흙이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동물 가죽을 지붕 위에 씌운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가죽으로 된 케이프를 걸치고, 여자는 케이프나 스커트를 착용하며, 머리는 붉은 흙으로 굳힌 특이한 모양의 헤어 스타일로 꾸민다. 남성 중심의 사회이며 모든 씨족은 남자들이 우선권, 결정권을 가지고 움직인다. 또한 일부다처제로써 씨족외혼이 이루어지며 같은 연령 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려져있지 않은데,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또한 마사이족의 계급사회는 10년을 단위로 하는 연령 집단인데, 같은 연령대끼리 같은 계급의 구성원이 된다. 50년생(50-59), 60년생(60-69)등으로 이 안에서는 동등하다. 아내를 빌려주는 것은 동기간에만 한정된다. 이 풍습 때문에 에이즈가 돌기도 한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다르며, 성별과 나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이들 사회는 은근히 평등해서 노예가 없다.[4]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서 노예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해 스스로 자살하면 했지, 노예로 잡혀가 굴욕적으로 살아가는 걸 혐오해서 마사이족은 노예로 끌려간 적이 없으며 백인이나 아랍인 등 다른 부족들의 노예사냥에도 죽어라 덤벼들어 침략자들도 장사나 겨우 하려다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그나마 잡은 애들이 반란 일으키고 분하면 자살하고 하니 손해만 봤고, 결국 학을 떼며 완전히 물러서야 했다고 한다.[나무위키]
남녀 모두 성인이 되면 할례-여성할례를 하는데, 그 방식이 특이하다. 17금. 할례한 마사이 남자 성기 사진. 그리고 성인식은 사자 사냥(!)인데 사자의 꼬리를 잡는 자가 성인식 최고의 남자로 꼽힌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위계가 높아지는데 한 등급은 대략 15년간 유지된다. 상하급 전사, 상하급 연장자 등으로 등급이 나뉘며 상급 연장자는 부족 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유목민족답게 1년 내내 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닌다. 주로 먹는 것은 고기와 우유, 그리고 동물의 피다. 전 인류적으로 봐도 키가 크고 또 뼈나 치아가 튼튼한 편이라 우유 섭취가 많은 북유럽과 우유 섭취가 적은 아프리카의 골다공증 비율을 예시로 우유 섭취가 많을수록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 예시로 종종 등장한다. 또한 사자 사냥을 하기도 하는데 마사이족이 마음만 먹으면 인근 사자의 씨를 말려버릴 수도 있다고. 실제로 2005년에 케냐 측이 마사이족 일부가 사자 서식처에 산다고 강제 이주를 시키려고 하자 분노한 마사이족이 사자들을 찾아가 닥치는 대로 창과 활만으로 숫사자 5마리, 암사자 3마리를 죽여버린 적이 있다.사자: 어째서 죽창질은 우리 몫인가 그 밖에도 활과 창에 부상당한 사자가 모두 30마리가 넘었는데 국제적인 비난은 케냐 정부가 다 먹었다. 하긴 무턱대고 나가라고 하니 대대로 살던 이들이 열받아 그렇게 사자가 중요하다면 사자를 다 죽이겠다고 나선 것이니… 결국 케냐 정부가 상당한 돈을 보상금으로 내주고 합의를 해줬다. 당시 외국 기자들이 취재한 걸 보면 마사이족이 오면 사자들은 그야말로 달아나기 바빴다고 한다.[나무위키]
아프리카 3대장의 패왕색 패기를 보라. 사실 동물들이 먹다 남긴 고기를 주워다가 식량으로 삼는 일은 유목/수렵 부족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동물들이 적당히 배가 불렀을 때 쫒아내는 것으로 직접 사냥을 하는 것에 비해서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다만 마사이족 특유의 위엄(?)때문에 특이하게 보이는 것 뿐이다
유일하게 키우는 가축이 바로 소인데, 마사이족의 설화에 따르면 소는 마사이족만 가질 수 있는 독점적 가축이라 하여 다른 부족의 소를 약탈해와서 키우거나 먹는다. 사냥해온 짐승의 피를 우유에 섞은 것이 주식인 만큼 소는 마사이족에게 있어 최고의 재산이며 가축이 아니라 거의 가족 수준으로 굉장히 잘 대해준다. 그 이유는 마사이족의 전통 설화와 관련이 있다.
옛적 태고시절 하늘나라에 마사이족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곧 하느님이요, 그들의 말로 '은가이(Ngai)' 즉, 신(神)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았다. 그들은 지상의 세계가 매우 아름다워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상을 동경한 나머지 아이들은 아버지 은가이 신에게 허가를 얻었다. 이렇게 하여 한 집단이 밧줄을 타고 천국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은가이 신은 아이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가 지상에 내려가되 결코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잡아먹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소와 양과 염소를 내려 보낸다. 이 짐승들을 길러 그 젖을 먹고 살아야 한다. 내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동물을 해치거나 잡아 먹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예,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며칠이 안 되어 아이들은 은가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어느날 그만 사슴 한 마리를 잡아먹고 말았다. 하늘나라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 은가이 신은 격분했다. "저놈들이 내 말을 거역하다니…" 하면서 하늘나라에서 타고 내려간 밧줄을 잘라버렸다. "너희놈들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겼다. 너희들은 사슴을 해친 죄로서 하늘나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벌을 받을지어다." 이에 놀란 아이들은 은가이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버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짐승을 잡지 않겠으니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밧줄을 내려주소서." 그럼에도 은가이 신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너희는 이대로 하늘에 되돌아올 수 없다. 다만 내가 함께 내려보낸 소와 양과 염소를 너희가 지상에서 열심히 길러 내가 만족할 만큼 그 숫자가 증가했을 때, 나는 너희들이 하늘나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밧줄을 내려줄 것이니라."
[아프리카의 부족과 문화, 유종현][나무위키]
마사이워킹
맨발로 걷는다고 알려진 마사이족의 워킹이 디스크를 예방하는 등 몸에 좋다고 해서 이를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세교정 기능성 신발의 일종인 마사이워킹 슈즈가 2000년도쯤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중고나라 가보면 몇 만원에 굴러다닌다 다만 알고보면 마사이족들은 맨발로 걷지 않고 앞의 사진처럼 대부분 폐타이어로 만든 슬리퍼나 조리를 신으며, 우리가 마사이워킹 슈즈라 알고 있는 신발은 스위스 기업에서 만든 것이다.[나무위키]
케냐 정부와 탄자니아 정부에서 농경 정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서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들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관광객들에게 관광용품을 팔거나 사진 찍고 돈을 받는 것도 많다. 이 때문에 가짜 마사이 마을도 있다.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은 민속촌 같은 테마파크고, 실제 마사이 마을은 따로 있는 것. 관광객 상대로 돈 좀 만진 마사이들은 차도 굴리고 집도 잘 지어놓고 살며, 딱히 잘 살지는 않더라도 휴대전화를 가지면서 통화를 한다든가 모바일 뱅킹을 하는 경우도 많기도 하다. 물론 전기가 보급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충전을 태양광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리고 모든 마사이족들이 전통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거나 관광업으로 살고있는 것도 아니라서 상당수의 마사이족들이 돈을 벌려거나 기회를 찾아서 도시로 떠나기도 하며, 일부 잘사는 마사이족들은 정계에 진출한다거나 하기도 한다. 마사이족 가운데서 가장 출세한 인물로는 에드워드 로와사라는 인물이 있는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한국 만화에는 이우정의 갈기없는 검은 사자, 허영만의 잠비지강의 달무리에 나온 바 있다.
2005년 발매된 가수 렉시 2집의 타이틀곡 '눈물씻고 화장하고'의 뮤직비디오에서 마사이족 주민들이 특별 출연하여 제자리 뛰기 등의 전통의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엠넷 비틀즈코드에서 렉시가 밝히기를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진짜 호랑이와 뱀을 가져다 놓고 촬영해서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
체체파리가 유행했던 어느 해에 가축이고 사람이고 모두 '수면병'에 걸려서 거의 멸족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당시 이들을 관찰한 일부 백인들은 두툼한 입술이 많은 보통 흑인과 다른 외모, 유독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등을 가진 이들이 미개한 흑인일 리 없다며 고대 로마병사들의 후예가 아프리카에서 떠돌다가 남은 것 아니냐는 개소리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니제르콩고어족과 나일사하라어족의 차이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으로 주로 서아프리카의 정글 지역에서 살아온 니제르콩고어족은 비교적 키가 작고 코가 납작한 반면, 마사이족을 비롯한 나일사하라어족은 대개 아프리카의 뿔 지역 등 건조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생활 환경에 맞게 키가 커진 것.
의식은 올로이보니라는 제의 담당자가 맡는데 이 사람은 정치적인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종교지도자이다. 우리나라의 고대 제사장과 같은 성격.[나무위키]
사냥할 때 창과 방패, 활을 주로 써서 실제 싸울 때도 무기는 이런 것들을 사용할…리가 없고 경비들이 총으로 잘만 무장하고 있다. 케냐는 좀 사정이 낫지만 아프리카의 치안이 시원치 않아 잘못하면 무장반군이나 강도에게 당할 수 있고, 사자나 하마 등 냉병기로는 답이 안 나오는 맹수들도 널린 아프리카 초원인데 총을 안 쓸 리가 있나…사실 아직 발견조차 못 한 극오지의 원주민이 아닌 이상 원주민들이 원시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대부분 관광 서비스지 절대다수는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다. 원주민 관광지에서 원주민들이 자기 것보다 훨씬 최신형의 전자기기를 쓰고 있었다는 관광객의 증언은 자주 나온다[나무위키]
1950년대 케냐에서 키쿠유족이 중심이 된 마우마우단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키쿠유족과 본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사이족은 영국 식민정부 편에 서 있었다. 한 영국군 장교가 자기가 담당하는 마사이족들에게 "키쿠유족이 가진 무기(arm)를 모두 수거해 오라"고 하자, 즐겁게 출동한 마사이들은 커다란 바구니에 피가 흥건한 "키쿠유족의 팔(arm)"을 가득 담아다가 자랑스럽게 내놓아 그 장교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weapon을 가져오라고 했으면 별 일 없었을 텐데 이는 영국의 작가 이블린 워가 1959년 3월에 동아프리카에서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한 편지에 나온다. 근데 팔로도 사람을 해칠 수 있어서 팔도 무기라고 하면 무기라고 할 수는 있겠다 마사이족이 오해한 게 아니라 '고의'로 팔을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다른 원시 부족들이 자신들의 강인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오해한 척 하고 전리품으로 이렇게 신체의 일부를 가져와버리는 사례가 이 외에도 있기 때문이다.[나무위키]
아프리카 창세 신화
신이 화가 나서 만든 사람 <도곤족>
창조 신 암마는 하늘에 단지 모양의 해와 달을 만들었다. 해에는 여덟 개의 붉은 청동 띠를 둘러 하얀 빛이 나게 하였고, 달에는 하얀 띠를 둘렀다. 해와 달을 만든 후, 지친 암마는 진흙 부스러기를 공중에 뿌려서 별을 만들었다. 암마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았다.
"진흙을 아래로 던져 대지도 만들어야지."
외로웠던 암마는 대지를 만들어 근처에 두었다. 암마는 대지와 결합하려 하였지만 흰개미집이 막고 있어 대지에게 갈 수가 없었다. 이에 암마는 흰개미집을 부수고 대지와 만나기는 했지만 완전하게 결합할 수가 없었다. 그 일로 대지는 쌍둥이를 낳지 못하고 못된 자칼을 낳았다.
암마와 대지는 그 후 또다시 결합하였고 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의 몸 위쪽은 사람이었고 아래쪽은 뱀이었다. 몸은 푸른색이었고 팔은 고무처럼 유연했고 눈은 붉었고 혀는 뱀처럼 갈라져 있었다. 암마는 쌍둥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 살던 쌍둥이가 어느 날 대지를 내려다 보다가 어머니 대지가 알몸으로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이 없는 어머니를 안타깝게 여겨 하늘의 식물로 옷을 짜서 어머니에게 걸쳐 주었다. 그러자 대지는 언어를 얻었다.
한편 신을 기만하고 태어난 자칼은 언어를 가진 어머니인 대지를 질투했다. 옷을 빼앗기 위해 어머니에게로 달려들었다. 놀란 대지는 자칼을 피해 개미로 변하여 개미굴 속으로 피했지만 자칼의 날카로운 이빨에 대지의 옷자락을 낚아채여 언어를 빼앗고 말았다.
언어를 빼앗긴 대지에게 화가 난 암마는 대지의 여신 없이 혼자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그 사람들이 도곤족이다. 암마는 사람들을 땅으로 내려 보냈으나 하늘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한 도곤족 사람들은 땅에서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하늘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오기로 하고 도곤족 한 사람이 쌍둥이가 지키고 있는 대장간에서 태양 한 조각을 훔쳤다. 이를 발견한 여자 쌍둥이는 번개를 던졌고 그 사람은 태양 조각을 담기 위해 만든 가죽 풀무 뒤에 숨어서 번개를 피했다.
그러자 남자 쌍둥이가 번개를 던졌으며, 그 사람은 아주 빠르게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번개를 피할 수 있었지만 팔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전에는 사람들의 팔 다리에 쌍둥이의 팔다리처럼 관절이 없었는데 번개를 피하려다가 뼈가 부러지면서 관절이 생겼다고 한다.[다음백과]
밧줄 타고 내려온 사람 <마사이족>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지대에 분포하고 있는 마사이족은 원래 하늘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를 은가이(Ngai)라고 불렀고, 은가이는 신이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지상을 내려다 본 그들은 사람들의 세상에 가보고 싶은 충동에 은가이 신에게 허락을 구한다. 은가이 신은 허락을 하지만, 그 대신 조건을 단다.
"지상에 내려가도 절대로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소와 양과 염소를 내려 보내줄 테니 이 짐승들을 길러서 그 젖을 먹고 살아야 한다. 내 명령을 어기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아버지 은가이 신에게 약속을 하고 마사이족은 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지상의 여러 동물들에 욕심이 난 마사이족은 며칠도 못가서 은가이 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사슴 한 마리쯤이야 어떻겠어. 아마 모를실 걸. 동물들이 이렇게 많은데 "
마사이족은 사슴을 잡아먹었다. 하늘에서 이것을 지켜본 은가이 신은 화가 나서 하늘로 올라오는 밧줄을 잘라버렸다. 마사이족은 뒤늦게 후회하며 은가이 신에게 간절하게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젠 절대로 다른 짐승들을 잡지 않을게요.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밧줄을 내려주세요."
하지만 은가이 신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너희는 이대로 하늘로 되돌아올 수 없다. 다만, 내가 함께 내려 보낸 소와 양과 염소를 열심히 길러서 그 숫자가 내가 만족할 만큼 늘어났을 때, 하늘로 돌아올 수 있는 밧줄을 내려 주겠다."
마사이족은 은가이 신에게 용서받아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도 소, 양 , 염소를 열심히 기르며 그 수를 늘리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마사이족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거주한다. 가장 키가 큰 부족으로 평균 키가 173cm이며 칼리하리 사막이 주 생활권이다. 창 하나로 사자와 싸우며, 소의 수는 부와 비례한다. 사냥을 한 후 그 자리에서 동물의 피를 마신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횡으로 열을 지어 맨발로 달리는 용맹한 모습의 부족이 바로 마사이족이다.[다음백과]
사람들을 떠난 신
<절구 방망이에 화가 난 신, 요루바족>
옛날에는 사람을 창조한 신이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사람들이 약속을 어기고 속여도 원하는 건 끝내 거절 못하고 다 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필요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요구하였고, 부족한 것이 없어도 사람들의 바램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신의 그런 정성에도 사람들은 하늘 바닥을 두드리고 절구 방망이로 치고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끝없이 신을 괴롭혔다.
요루바족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해안가 부족들의 신도 사람들의 행동에 지쳐 사람들이 닿을 수 없는 하늘로 떠났다. 신들이 사는 하늘은 사람들의 머리 바로 위에 있었다. 하늘 아래에는 아주 긴 절구방망이를 가지고 절구를 찧어 요리를 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옥수수를 찧을 때마다 절구방망이로 하늘 바로 위에 살고 있던 신을 수시로 쳤다. 어느 날 그 여자는 세게 절구질을 하다가 그만 신의 눈을 치게 되었다. 그러자 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곳을 떠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나무절구를 보이는 대로 모두 모으라고 하였다. 나무절구를 쌓고 그 위에 또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하늘에 거의 다다르게 되었다.
하지만 절구 하나만큼 모자랐고 절구를 하나만 더 찾으면 되었지만 그들은 그 하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어떤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가장 아래 바닥에 있는 절구를 가져와 꼭대기에 놓으라고 하였다. 맨 밑에 있는 절구를 꼭대기에 올려놓자마자, 다른 절구들이 모두 무너져 내려 결국 신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다음백과]
사람들이 가져온 실수, 죽음
<하늘에서 죽음을 데려온 남자, 부간다족>
사람들의 지나친 요구 때문이었을까. 사람을 창조한 신은 사람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어 하늘 아래 세상으로 보냈지만 사람은 실수로 죽음을 가지게 된다. 우간다의 부간다족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경우이다.
신에게서 암소 한 마리만 받아서 지상으로 내려온 킨투는 우간다에 거주하였다. 풍족해도 신에게 계속 요구한 다른 부족의 사람들과는 달리 부간다족의 최초 조상인 킨투는 암소 한 마리만 정성껏 키우며 그 우유를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땅을 여행하던 하늘의 딸이 킨투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하늘로 돌아가 하늘의 신에게 인간 킨투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신은 킨투를 시험하기 위해 암소를 하늘에 숨겼다. 그때 하늘 신의 딸이 나타나서 소가 하늘에 있으니 하늘로 와서 소를 찾으라고 알려주었다.
하늘로 올라간 킨투는 세 가지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백 명분의 식사를 한꺼번에 먹기, 도끼로 바위를 잘라 땔감 만들기, 깨끗한 이슬로 물 만들기의 시험을 통과한 킨투는 신의 허락을 얻어 하늘의 딸과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킨투와 신의 딸이 다시 땅으로 갈 채비를 할 때 신이 말했다.
"내 아들 가운데 죽음이 너희를 따라가려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죽음이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떠나거라. 혹시 잊은 물건이 있더라도 다시 돌아오지 말고 그냥 가야한다."
킨투와 신의 딸은 암소 외에도 양, 닭, 바나나나무를 챙기고 죽음 몰래 하늘을 떠났다. 그러나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킨투는 깜빡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닭의 곡식을 가져오지 않았어. 다시 돌아가서 가져오겠소."
킨투의 말에 신의 딸은 말렸다.
"한번 떠나면 절대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가지 마세요."
그러나 킨투는 신의 딸의 부탁을 뿌리치고,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곡식만 얼른 챙겨서 돌아오려고 할 때 죽음에게 들키었다.
"나도 데려가 줘."
킨투는 쫓아오는 죽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함께 땅으로 내려왔다. 킨투와 하늘의 딸은 행복하게 살면서 아이들도 많이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음이 킨투에게 요구했다.
"네 아이들 중 한 명을 내 요리사로 줘."
킨투는 거절했고 죽음은 다음 날 또 졸랐다.
"네 아이를 내 요리사로 주지 않으면 아이를 죽일 거야."
킨투는 '죽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얼마 후 아이는 병에 걸려 죽었고 다른 아이들도 계속 죽었다. 킨투는 하늘의 신에게 호소하였다. 킨투의 간곡한 부탁에 신은 다른 아들을 불러 죽음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신의 아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가축과 함께 집에 있으라고 부탁을 했고 죽음을 보더라도 크게 소리치지 말라고 하였다.
잠시 후 죽음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죽음이 나왔을 때, 한 아이가 죽음을 보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죽음은 재빨리 땅속으로 도망쳤고 신의 아들은 죽음을 잡는 데 지쳐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킨투는 화가 나서 말했다.
"죽음아. 네가 내 아이들을 데려 간다면 나는 그 두배의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겠다."
그 후로 죽음은 대지에서 살게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카멜레온의 실수
줄루족의 신화에 따르면 최고신은 사람이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소식을 알리기 위해 카멜레온을 인간 세상으로 보내었다. 하지만 느릿한 성격의 카멜레온은 가는 도중에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빈둥빈둥 시간을 낭비했다. 짜증이 난 최고신은 카멜레온이 전할 내용을 부인하는 내용을 발빠른 도마뱀에게 주었다. 도마뱀은 빠른 걸음으로 카멜레온보다 먼저 인간 세상에 도착하여 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람들은 도마뱀의 말을 받아들였으며, 그 후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다음백과]
<불을 훔친 벌로 받은 죽음, 피그미족>
피그미족의 신은 인간에게 불을 주지 않았으며, 불은 신만이 소유하고 있었다. 신에게는 나이 드신 어머니가 있었고, 신의 어머니는 신만이 갖고 있는 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켰다. 신이 어머니만 남겨두고 여행을 떠난 어느 날, 길을 잃은 피그미족 한 사람이 숲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신의 집까지 오게 되었다.
길을 물어보기 위해 집 안에 들어갔지만 잠든 신의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때 피그미는 신의 어머니 앞에 있는 불을 보았다. 따뜻한 온기를 발하는 붉은 빛에 매혹되어 불을 훔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불 앞으로 다가가 신의 어머니가 깨지 않게 불을 훔쳐 달아났다.
피그미가 도망간 후 추위에 떨며 일어난 어머니는 불이 없어진 걸 알고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신은 어머니의 소리를 듣고 멀리 도망가지 못한 피그미를 붙잡아 불을 빼앗고 호통을 쳐 피그미를 돌려보냈다. 피그미는 마을에 오자마자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따뜻한 붉은 빛을 신 만이 가지고 있어. 얼마나 따뜻하던지. 훔쳐오고 싶었는데…… 우리도 그 빛이 있으면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거야."
그때, 용감한 피그미 한 사람이 자기가 불을 훔쳐 오겠다고 나섰다. 그 사람은 신의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갔지만 불을 훔치려는 순간 신에게 들켜 혼쭐이 나 쫓겨났다.
"신에게 불을 훔치는 것은 어려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모를까."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피그미가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를 달고는 나는 연습을 한 후 신의 집으로 향했다. 날개를 단 피그미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불을 낚아챈 다음 다시 하늘을 날아서 도망치기시작했다. 신의 어머니가 큰 소리로 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불을 훔친 놈이 하늘로 도망쳤다."
신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피그미 뒤를 쫓았다. 높은 산을 지나고 계곡을 지나도 잡을 수가 없었다. 날개를 단 피그미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 도망을 갔다. 피그미의 능력에 놀란 신이 말했다.
"너의 능력을 인정해 주겠다. 불은 너에게 줄테니 나의 형제가 되어줘."
이렇게 해서 날개를 단 피그미와 신은 의형제를 맺고 피그미는 불까지 얻게 되었다. 신은 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왔지만 신의 어머니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말았다.
"사람들을 이대로 두었다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
신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죽게 한 것에 대한 벌로 피그미족에게 죽음을 주었다. 그 전에는 세상에 죽음이 없었지만, 그날부터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다. 사람들은 불을 얻은 대신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불에 대한 다른 이야기
피그미족은 긴 나무껍데기 옷을 입고 침팬지 마을로 들어가서 불 가까이 앉아 옷에 불을 붙여 달아난다. 피그미족이 훔친 불로 침팬지들은 불 없이 야생과 일만 먹으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다음백과]